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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문인수의 '오후 다섯시 - 고(故) 박찬시인 영전에'

시계아이콘00분 47초 소요

내가 한쪽으로 기우뚱, 할 때가 있다./부음을 듣는 순간 더러 그렇다./그에게 내가 지긋이 기대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그가 갑자기/밑돌처럼 빠져나갔다. 나는 지금/오랜 세월 낡은 읍성 같다./"조금 전, 오후 다섯시에 운명했습니다."/2007년 1월19일./그의 이마 쪽 초록 머리카락 한줌,/염색이 아니라 섣달/시린 바람 아래 웬 생풀 나부끼는 것 같은 날.
도대체, 인생이 어디 있나,/있긴 있었나 싶을 때가 있다.
나 허물어지는 중에 장난치듯
한 죽음이 오히려 생생할 때 그렇다.


■ 나도 박찬 시인을 알고 있다. 대학원에서 시를 공부하던 시절, 장충동의 삐걱이는 나무의자 한쪽에 그는 앉아 묵직한 팔을 내 어깨에 올렸다. 언론에서 밥을 먹는 선배였던 사람으로, 말 안해도 나를 알겠다는 듯이, 내가 시를 쓴다는 일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이, 월매네 주막에서 흘린 막걸리가 번지는 내 기자수첩을 만지면서 그는 깊이 입자위를 파며 웃었다. 그 오후 다섯시의 소식을 들었을 때, 나 또한 나를 눌렀던 깊은 왼쪽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아마도 그날 영전에서 읽었을, 문인수 시인의 이 시를 읽으며 뒤늦게 울컥 한다. 이마 쪽 초록 머리카락 한 줌, 섣달 시린 남산 바람 아래 웬 생풀 나부끼는 것 같던, 그 이마 아래서 싱거운 농담 한 자락에 소년처럼 파안(破顔)하던 사람. 침 튀는 식은 파전 속에 부추 두어 가닥이 핏줄처럼 돋아있던 풍경까지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를 지나갔을 오후 다섯시, 젓가락으로 든 안주처럼 괜히 목이 메이는 시. 살아있는 일이 나도 문득 어리둥절하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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