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김민진 차장
미친 전셋값으로 묘사되는 서울 반포동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 아파트는 준공 초기 미분양 아파트였다.
2009년 봄 입주를 앞두고 있던 이 아파트 단지 외벽에는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미분양 물량을 찾는 해외교포들을 환영하는 뜻에서 시공사인 삼성물산이 걸어놓은 것이다. 재건축 단지로 2444가구 중 불과 426가구만이 일반분양이었지만 그마저도 분양이 쉽지 않았다.
금융위기로 국내 부동산시장이 곤두박질치던 이 시기 해외교포들에게 미분양 아파트를 판촉 하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단지의 전용면적 84㎡ 분양가는 10억원 남짓. 불과 4년 만에 당시 분양가에 육박하는 전세값을 기록하고 있으니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보면 격세지감이요, 가까이서보면 살인적인 기현상이다(이 단지에서는 최근 84㎡ 9억원이 넘는 전세 물건이 나왔다).
당시 같은 면적 전셋값이 4억원이 안됐으니 임차보증금을 연 5% 초과해 올릴 수 없도록 규정한 임대차보호법도 무용지물이다.
9억원짜리 전세야 서민들이 찾는 물건과는 거리가 먼데 무슨 앓는 소리냐고도 하겠다.
그러나 몇 년째 꾸준히 오르는 전세값을 보면서 짙은 한숨을 쉬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전세 만기를 앞둔 가장의 마음은 어떠랴. 요즘 부모들은 전세계약기간이 반환점(1년)만 돌아도 걱정이 산더미같이 쌓인다고 하지 않나.
직장 출퇴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들 학교문제를 생각하면 외곽으로 눈을 돌리기도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거래실종'을 전셋값 상승의 주된 이유로 꼽는다. 하지만 전 정권이나 현 정권이나 몇 년째 부진한 매매시장을 활성화시키지 못하고 있으니 하나마나 한 소리는 이제 집어치우길 바란다. 매매활성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시행하는 거듭된 세제 혜택은 일부 계층의 주머니만 불려줄 뿐이다.
두 가지만 제안하고 싶다. 가장 시급한 것은 도심에서 찾는 사람이 많은 '투룸'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정부는 몇 년째 숫자 놀음에 빠져 원룸 주택만 양산하고 있다.
하지도 못할 뉴타운, 재개발 때문에 묶여 있는 도심과 역세권 빌라, 다가구ㆍ단독주택 밀집 지역의 건축허가 및 착공제한도 빨리 풀어야 한다. 아파트만 집이 아니다. 언제가 될 지 모르는 아파트 신축을 위해 도심의 많은 땅을 묶어놓으니 정작 서민들이 살 집은 줄어들기만 한다.
김민진 기자 asiak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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