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당 20km가 넘는 놀라운 연비라는 광고에 혹해 지난해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차량을 산 김연비씨는 자동차 계기판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리터당 21.6km란 광고와 달리 실제 연비는 15km를 넘기 힘들었다. 꽉 막힌 강남 도로에서는 10km도 채 나오지 않았다. 비교적 덜 막히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려야 10km 후반의 연비가 나왔다. 급기야 올해는 세계에서 하이브리드 차량을 제일 잘 만든다는 제조사에서마저 복합연비는 16.4km라며 연비를 하향조정을 했다. 2000cc대 중반의 중형차 연비치고 15km 안팎의 연비가 나쁜 것은 아니다. 비슷한 규모의 일반 가솔린 자동차와 비교해서는 확실히 효율적인 연비다. 문제는 김씨가 가졌던 기대감이다. 광고만큼은 아니더라도 10km 후반대의 연비는 나올 것이란 게 김씨의 기대였다.
2분기 사상 최대실적을 낸 삼성전자가 요즘 연일 급락세다. 외국인은 못 팔아 안달인 듯 물량을 쏟아내고 있다. 6월5일 이후 3조원 가까이 삼성전자를 순매도했던 외국인은 지난 5일 실적 발표 이후에도 3000억원 이상 순매도했다. 이 때문에 지난달 초 150만원을 웃돌던 주가는 120만원선을 걱정해야 할 수준까지 떨어졌다.
외국인의 매도 폭탄만 보면 이익이 대폭 감소했거나 적자라도 본듯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매출 57조원에 영업이익 9조5000억원으로 모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삼성전자가 2분기 기록한 영업이익은 지난해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 2~4위 기업인 현대자동차와 포스코, 현대모비스의 연간 영업이익을 합친 것보다 많은 금액이다. 굳이 다른기업과 비교하지 않고, 이전 실적과 비교해도 눈부신 성과다. 지난 1분기보다 8.2% 증가했으며 지난해 2분기와 비교하면 무려 47% 이상 이익이 늘었다.
그런데도 외국인을 비롯한 시장이 이처럼 외면하는 것은 당초 기대치를 밑돌았다는 이유에서다. 시장의 기대치는 영업이익 10조원이었다. 외양만 놓고 보면 100점 만점에 95점을 맞아 1등을 한 아이를 꾸짖는 모양새다.
삼성전자 주주 입장에서는 이익이 줄어든 것도 아니고, 높아질대로 높아진 시장의 기대를 100%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해서 이렇게 빠져도 되냐고 불만을 토로할 수 있다. 글로벌 경쟁기업들과 비교해서도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얘기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사업구조를 본다면 마냥 저평가 메리트만 얘기하기 힘들다. 삼성전자는 휴대폰과 반도체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전형적인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게 아니라 누가 개척한 시장에서 빠르게 추격해 1위를 추월하는 게 삼성전자의 경쟁력이다. 차려진 밥상은 잘 먹어도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이는 전문가들이 이번 2분기 실적을 보고, 3분기 이후 실적까지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업이익 10조원은 삼성전자가 현재 차려진 밥상에서 계속 성장세를 구가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불과 5000억원이 모자란 것에 불과한데 너무 과민반응하는 것 아니냐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전필수 기자 phil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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