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1999년 6월. 당시 구조조정을 하고 있었던 삼성물산 유통사업 부문은 영국 테스코를 합작 파트너로 선정해 삼성테스코, 지금의 홈플러스를 설립했다. 당시 테스코는 전 세계적으로 794개의 점포를 운영하는 대형 유통업체인데다 선진적인 경영 기법으로 명성이 높았다.
이후 한국 대형마트 시장은 세계 1위인 미국의 월마트와 세계 2위인 프랑스의 까르푸, 영국의 테스코 등 내로라하는 외국기업들이 영역을 넓히며 주도했다. 토종은 신세계 이마트뿐이었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던 것일까. 한국시장을 점령하겠다며 기세등등했던 까르푸와 월마트는 정착한 지 10년도 안돼 외국기업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업계 꼴찌의 굴욕을 당했다.
이내 철수설이 흘러 나왔지만 본사 회장들은 철수를 하지 않겠다는 공식입장을 수 차례 발표했다. 그러다 결국 2006년 4월과 5월 한국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채 짐보따리를 싸서 나갔다. 각각 이랜드와 신세계에 인수되기까지 '양치기 소년'이라는 오명과 상식밖의 매각 전략으로 뭇매를 맞으며 힘든 한국 탈출의 시기를 보냈다.
반면 삼성테스코는 한국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본사의 지원과 삼성물산 출신들의 뛰어난 영업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업계 2위를 유지하며 확고한 자리를 굳혀왔다. 2011년 3월에는 삼성물산의 남은 지분을 모두 사들이며 전국 매장 간판에서 삼성테스코를 떼어내 독자 생존의 길을 걸어왔다.
세계 1, 2위 유통업체들의 철수에도 끄떡없던 홈플러스가 흔들리고 있다. 신규 매장 출점이 사실상 가로막혀 손발이 묶인데다 해외진출도 불가능해 다른 대형마트에 비해 유독 피해(?) 규모가 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홈플러스는 2012년 회계연도(2012년 3월부터 올 2월) 매출이 8조8673억원으로 전년(8조8628억원)보다 0.1% 성장하는 데 그쳤다. 만년 3위였던 롯데마트는 8조9546억원으로 홈플러스를 제쳤다. 2000년대 초반 대형마트 업계가 3강 체제로 굳어진 이후 대형사 간 순위가 바뀐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대형마트에 비해 입점업체의 타격도 심각한 수준이다. 홈플러스는 대형마트로서는 처음으로 테넌트(임대) 매장 개념을 도입했다. 1999년 홈플러스 창립 당시 대형마트는 대부분 '창고형 할인점'이었다.홈플러스 테넌트 점포들의 매출은 홈플러스 전사 매출의 약 20% 수준에 육박할 만큼 높은 수준. 그런데 최근 마트 강제휴무로 인해 테넌트 매장에 입주해 있는 영세 자영업자 타격이 심각해졌다.
업계의 오랜 2위였던 홈플러스. 정부의 규제로 대형마트사들이 마이너스 신장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는 가운데 홈플러스의 자리는 더욱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홈플러스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에 자리에 오른 도성환 대표. 14년간 지휘한 이승한 회장의 뒤를 이은 그에 대한 평가는 탁월한 경영능력과 과감한 추진력의 소유자란 것이다. 홈플러스의 새로운 선장에 대한 기대치가 현실에서 마법을 부려보길 기대해 본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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