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요즘 여의도 성모병원 정신과를 찾는 환자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인데, 최근 들어서는 우울증세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증권맨들이 심심찮게 찾아오기 때문이란다.
대형증권사 한 임원은 "얼마 전 퇴사를 결심한 직원을 붙잡기 위해 면담을 했는데 패배감이 상당하더라"며 "휴가 뒤 복귀를 권하고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있는데 돌아올지 잘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삼성증권이 실시하고 있는 인력재배치가 증권가 핫이슈로 부각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대리 및 과장급 직원 절반 가량이 이직을 신청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사내 분위기는 그야말로 얼어붙은 상태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거의 모든 부서에서 재배치를 희망했던 직원이 누구인지 캐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배신자라는 꼬리표가 달리면 당장 올해 정기인사에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만큼 모두가 민감한 상태"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팍팍한 영업환경이 낳은 후유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연봉 대폭 삭감, 리서치센터 폐쇄, 대규모 권고사직 등 악성 루머가 하루가 멀다고 메신저를 통해 양산되고 있다.
노조도 근거없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며 경영진과 비생산적인 소모전을 벌이는 형국
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엄습한 이후 제대로 된 황소장을 경험하지 못한 탓일까. 한켠에선 으례 그런 것처럼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지난 몇년간 초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그나마 금융투자업계 수익 효자노릇을 했던 채권마저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자 증권맨들은 그야말로 '멘붕'상태다.
이와 맞물려 잠복해있던 '관(官) 콤플렉스'도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다. 은행, 보험업계보다 규제가 많아 제대로 영업을 하기가 어렵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됐다고는 하지만 금융당국이 상당부분을 양보한 법안에 불과하다"며 "장기펀드 과세 감면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법안은 모조리 계류가 된 상황"이라며 혀를 찼다.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기준 완화 등 금융당국을 향한 업계 요구도 속시원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으니 일견 이해는 간다. 하지만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스스로 생산성을 낮추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증권사 노조들이 '정황'만 가지고 거리로 나서는 것도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투자증권 노조는 최근 사장 내정자 인사 연기에 대해 "관이 제3의 인물을 앉히려 한다"며 금융위원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우리금융 계열 사장단 인사가 줄줄이 연기되는 것과 맞물려 있는데, 우리투자증권 노조에서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어려운 시장여건에서 모두가 힘든 국면이다. 하지만 콤플렉스에 젖어 스스로의 경쟁력을 깎아내리면 반등 시점에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조태진 기자 tj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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