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1991년 한강변 명수대 아파트에 투명방음벽이 설치됐다. "88도로의 소음을 막기위해 방음벽을 설치하라"는 주민요구와 "한강조망권을 보장하라"며 방음벽 설치를 반대한 저층주민의 요구가 충돌했다. 서울시는 투명방음벽이란 대안으로 갈등을 해결했다.
투명방음벽이 떠오른 이유는 투명댐 때문이다. 10년묵은 갈등이 풀렸다는 뉴스가 주말인 16일 나왔다.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방법에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합의했다. 암각화 주변에 '높낮이가 조절되는 투명댐(키네틱 댐ㆍKinetic Dam)'을 설치해 추가 훼손을 막은 뒤 항구적 보존방법을 찾기로 했다. 합의가 이뤄지기 전 문화재청은 암각화를 물에 잠기게 하는 사연댐의 수위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울산시는 수위를 낮추면 식수공급에 문제가 있다며 생태댐을 쌓거나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방안을 주장했다. 10년간 평행선을 달려왔다.
정홍원 국무총리와 변영섭 문화재청장, 박맹우 울산광역시장,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동연 국무조정실장 등 5명이 모였다. 정총리 중재로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합의했고 문화부장관과 국무조정실장이 합의내용을 뒷받침한다. 정총리는 지난 1일 현장에 다녀왔다. 총리가 직접 갈등해결에 나서고 정부부처가 이를 뒷받침하는 해결방법은 정부가 관리하는 69개 갈등과제 해결에 모범이 될 전망이다.
투명방음벽과 투명댐은 '투명'말고도 공통점이 있다. 당국의 적극적인 중재와 새로운 기술을 채택한 아이디어다. 현실적 대안을 수용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민원인들은 '조망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고 반대했었다. 합의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설명과 최대한 조망권을 보장하도록 시공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타협했다. 지금은 고속도로, 고가도로 주변에 대형아파트 단지가 있으면 대부분 투명방음벽을 설치한다.
개발과 보존을 두고 우리 사회가 홍역을 치른게 한두번이 아니다. 시화호, 새만금, 사패산 터널, 방폐장 설치 등 갈등을 관리하는 데 실패해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부담한 경험이 많다. 때문에 총리가 적극적 중재에 나서 반구대 암각화보존을 위한 실천가능한 해법을 찾은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끝난 게 아니다. 암각화 보존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 관문인 문화재위원들의 동의를 구할 수 있다.
세운상가 정비사업에서 교훈을 얻자. 이명박, 오세훈 두 서울시장은 종묘부터 남산까지 녹색축을 만든다며 이 일대를 재개발하기로 했다. 문화재위원회에서 초고층빌딩을 건설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종묘에서 남산을 볼 수 없게 됐다. 유네스코는 종묘를 세계문화유산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문화재위원회는 초고층빌딩을 짓는 계획에 반대했다. 사업은 무산됐다. 관료만의 타협이 아닌 문화예술계와의 진정한 소통이 필요하다. 마지막 관문을 넘어 '반구대 갈등 해결'이 정 총리의 진정한 업적이 되길 기대한다.
세종=최창환 대기자 choiasia@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