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기획재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135조원에 달하는 복지확대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 조달방안을 보고했다. 보고 내용 중 그동안 세금을 내지 않았던 거래에 대해서 공평과세를 실현하겠다는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이 눈길을 끈다. 기획재정부뿐만 아니라 국세청과 관세청 등 과세당국은 지하경제에 공평과세를 실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강화하거나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세형평성 실현과 복지확대 정책의 세원 마련에 목적을 둔 이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은 뜨거운 찬반 논란에 빠지고 있다. 개인사업자,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세금조사와 상속ㆍ증여, 재산 은닉에 대한 과세 강경책이 영세사업자와 서민에게까지 연쇄적인 세금부담을 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나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확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하경제 양성화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력한 세원확보 방안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세입구조는 크게 부가가치세 28.6%, 소득세 19.1%, 법인세 18.6%로 구성돼 있다. 특소세, 상속세, 교통세, 관세, 교육세 등은 3% 내외다. 따라서 지하경제 양성화란 명목으로 세율을 올리지 않고 영세업자와 서민을 보호하며 큰 반발 없이 쉽게 세원을 확보할 수 있는 대상은 고액소득자 다음으로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대선의 핫이슈는 경제민주화였다. 선거 이후에는 잠잠해졌지만 지하경제 양성화도 경제민주화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에 대한 지하경제 양성화는 오히려 정부가 강조하는 고용 있는 성장, 기업 투자촉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때문에 정책의 결정과 집행과정에서 지혜를 필요로 한다.
필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구분 없는 기업회계 투명성 제고를 통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기업 규모가 작으면 외부감사를 면제해 줘야 한다는 인식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영세기업의 경영활동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경영의 투명성은 기업의 규모에 관계없이 제3자가 봐도 경영활동을 손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업의 모든 거래를 회계기준에 맞게 처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작은 기업들부터 투명경영을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고 회계시스템을 구축해 성실한 납세기업으로 성장해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이 외형적으로 성장해 가면서 겪는 성장통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이를 최소화하는 수단의 하나가 바로 경영과 회계의 투명성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가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본질적으로 독립적인 외부 감사인에 의한 견제와 확인을 필요로 한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기업회계 시스템을 선진화해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왔다. 그렇지만 사회 전 영역에서 경영의 투명성과 회계의 신뢰성이 같이 구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비영리법인ㆍ공익단체ㆍ서민금융기관 중 상당수가 회계 투명성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는 '공인회계사 장기발전방안'을 발표하며 우리나라 회계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6가지 추진과제를 제시했다. 6가지 추진과제 중 공공부문 및 중소기업의 회계 투명성 확대 등의 실천방안은 기업의 지하경제 양성화와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가 스스로 기업회계 투명성을 높여 자연스럽게 지하경제가 양성화되는 방안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투명경영이 조세정의를 앞당길 수 있다'는 믿음을 통해 조세확보에 대한 조급함을 억제하고 장기적인 안목 안에서 국가정책이 추진되기를 희망한다.
김일섭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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