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본 칼럼에서 우리나라 인재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역설적이게도 최근 한 일간신문은 선망 직장 면에서는 이공계 환대 현상이 있다고 보도하였다. 이야기인즉슨,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2008~2010년 대졸자들의 전공별 취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의ㆍ약학에 이어 공학 전공자들이 선호 직장(그 조사에서는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정규직으로 정의되었다)을 많이 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인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한 인식과는 사뭇 대비가 되는 대목이다. 학생들은 이공계를 기피하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아직 제조업 비중이 높고 투자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이공계 인력 공급보다 수요가 더 많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이공계 진로를 두고 고민하는 많은 이공계 적성자들에게 희망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희망적인 이야기는 며칠 전 청와대에서 가진 창조경제 설명회에서 찾을 수 있다. 청와대는 기자들을 초청하여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전략을 발표했다고 한다. 6대 전략 중에 창의 인재 양성 부분은 미래를 대비한 핵심으로 보인다. 벤처 및 중소기업의 창조경제 주역화, 과학기술 및 정보통신기술(ICT) 혁신 역량 강화 등의 전략만 보더라도 이공계 인재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함은 당연한 것 같다.
그렇다면 창조경제를 이끌어갈 바람직한 인재상은 무엇일까? 카이스트의 한 원로 교수가 일본에서의 경험을 얘기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있다. 자신이 경험한 일본 교수들은 각자 한 분야씩 깊이가 있지만 우리나라 교수들은 한결같이 여러 분야에 박식하단다. 그래서 일본 교수와 우리나라 교수가 일대일로 붙으면 우리나라가 이기지만 여럿일 때는 우리나라가 진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에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초협력 시대의 도래라는 제목으로 창조경제에 있어서 초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협력을 통한 창조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능력이 극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평적으로 폭넓은 지식을 가지면서도 어떤 한 분야에 대해서는 깊이가 있는 T자형 인재를 강조하던 시대가 있었는데, 이제는 지식과 능력에도 순서가 필요가 시대인 것이다. T자형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한 우물을 깊숙이 파야 한다. 그런 후에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을 통해 폭을 확대해 나갈 때 창의적인 인재가 되고, 창조경제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재상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 전기의 마술사로 불리는 크로아티아 출신의 니콜라 테슬라가 미국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만일 테슬라가 우리나라에 왔었다면 어땠을까? 언어의 장벽, 민족주의의 장벽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가 대학의 교수나 국가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왔었다면, 그는 단기간 실적을 위해서 국제 과학기술논문 인용 색인(SCI)급 논문을 쓰느라 혁신적인 기술들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을 것이 뻔하다.
테슬라 같은 인재들이 SCI급 논문을 열심히 써서 혁신적인 과학기술 선진국이 된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엔젤 자본의 토양이 있었기에 과학기술 선진국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조경제의 인재도 깊이가 기본이 되어야 이후에 넓이가 생기듯이, 국가 연구개발에 있어서도 단기간의 가시적 성과나 실적을 추궁하지 않는 장기적인 연구를 위한 토양이 제공된다면 혁신은 저절로 나올 것이다. 창조경제의 시발점이 되는 핵심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연구지원 기관에서 절대로 조급해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제대로 된 토양을 제공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명현 카이스트 건설 및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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