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명성황후 '홍릉'으로 가기 위해 첫 전차를 놓았던 곳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차가 서울 '청량리'에 놓이게 된 배경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당시 미나리꽝만 즐비하던 외딴 교외에 '청량리선'이 개통된 것은 고종의 명성황후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명성황후의 '홍릉'으로 국왕의 '능행길'이 이어지던 청량리에 전차가 놓이면서 조성된 국내 최초의 가로수길인 '홍릉길'은 일제강점기 시절 로맨틱한 휴양지이기도 했다.
지금도 강원도로 엠티(MT)를 떠나는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청량리역'. 이 역은 함경남도 원산을 거쳐 저 멀리 만주와 연해주까지 발길을 이어준 '경원선'과 경상ㆍ충청ㆍ강원ㆍ경기도의 토산물과 풍부한 자원 그리고 노동력을 경성으로 집하시킨 '중앙선'과 '경춘선'의 종착역이었다.
논밭과 초가집만 있던 청량리에 청량리역이 들어선 후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타 지역에서 들어온 값싼 농ㆍ임산물과 주변의 저렴한 임대료는 지방 이주민들을 끝없이 모이게 했다. 이때 온갖 물산을 사고파는 '경동시장', 서울의 마지막 청과물 판매장으로 생존한 '청과물시장', 한의약 전문시장인 '서울약령시'가 들어섰다. '서울 약령시'는 조선시대 사대문 밖 백성을 치료하고 여행자에게 숙소를 제공했던 '보제원터' 자리에 있다. 1968년 전차 운행이 중단된 후 이를 대신해 1974년 8월 서울역에서 출발해 청량리역에 이르는 국내 최초 전철인 '지하철 1호선'까지 개통되면서 청량리는 서울 동북부의 상업의 메카가 됐다.
청량리는 193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진 '도시계획'으로 철도건립 노동자들을 위한 '철도관사', 한국전쟁 피난민들을 위해 마련된 공영주택인 '부흥주택', 서민들을 위해 세워진 '미주아파트' 등 주거시설이 들어서면서 부도심으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이처럼 미처 알지 못한 청량리의 역사와 애환을 담은 '청량리의 변천사'를 선보이는 전시가 25일 개막했다. '청량리 특별전'으로, 서울 성동구 마장동 청계천로에 자리한 청계천문화관에서 오는 7월 21일까지 열린다. 지난해 청계천문화관에서 열린 '청량리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를 토대로 한적한 교외에서 서울 동북부 부도심이 되기까지 청량리의 역사를 소개하는 유물ㆍ사진ㆍ영상자료 200여점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에는 고종이 명성황후의 홍릉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홍릉천봉일정', 20세기 초 '전차 승차권', 전차를 타고 경성(서울)을 누비는 여행객들의 '관광안내도'를 포함해 나도향,나혜석,채만식의 소설 속 청량리 풍경을 담아낸 자료들을 엿볼 수 있다. 철도와 지하철이 만나는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이 지역 사람들이 만들어간 20세기 청량리의 모습도 '조선대박람회',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사건 사고', '철거를 앞둔 청량리 588' 등의 소주제로 나눠 조명된다. 청량리 이미지 중 하나인 '청량리 588'의 생성과 변천을 다룬 '창기ㆍ기생 자료',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유곽을 기록한 이태준,염상섭,현진건,김동인의 소설도 함께 전시된다. 이외에도 조선시대 한의학 관련 침통, 약갑, 서적 등과 개발이 진행되기 전 토지현황을 담은 '청량리동 지적도' 등도 공개된다. 이번 전시 입장료는 무료다. (문의 02-2286-3409~10)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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