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재 임기 두는 건 압력 견디기 위한 것"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중앙은행 총재에게 임기를 두는 건 정부로부터의 영향도 있지만, 시장으로부터 받는 압력을 견디기 위한 것이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중앙은행 총재의 임기를 보장하는 이유를 언급해 눈길을 끈다. 일반적인 얘기를 한 것이지만, 최근 김 총재 자신의 상황과 맞닿아 있어 주목된다. 김 총재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한 김 총재는 21일(현지시간) 오전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총재의 임기를 두는 건 트레이더의 비명 소리가 (중앙은행 총재를) 못살게 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요사이 김 총재의 입장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김 총재는 이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채권 시장의 기대와 달리 기준금리를 6개월 연속 동결했다.
한은의 금리 동결 소식에 금통위 당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0.15%포인트 급등했다. 하루 변동폭 기준으론 지난해 7월 12일 이후(0.22%포인트) 가장 큰 움직임이었다. 채권 시장의 이해관계자들은 다음 달 금통위에서만큼은 한은이 금리를 내려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주문하기 전까지 세 명의 한은 총재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교체됐다.
18대 조순 총재(1992년 3월~1993년 3월)는 김영삼 대통령 취임 직후 사실상 경질됐다. 대선 과정에서 김 대통령과 경쟁했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고소했는데 선거 후 김 대통령의 재가 없이 소를 취하한 사실이 알려져 미운털이 박혔다는 뒷말이 나돌았다.
19대 김명호 총재(1993년 3월~1995년 8월)는 부산지점 지폐 유출 사고로 낙마했고, 20대 이경식 총재(1995년 8월~1998년 3월)는 외환위기의 책임을 지고 교체됐다.
김 총재는 한편 정부와 한은의 시선이 엇갈린다는 지적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한은이)정부를 떠나 외딴 섬으로 있는 게 아니고, 당연히 정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하는 것"이라면서 금리 동결의 타당성을 강조했다.
김 총재는 또 "중앙은행이 당장 오늘만 보고 금융정책을 하지 않는다"면서 "일부 언론이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금리를 동결했다고 하는데 그건 너무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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