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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어느 개성공단 사장님의 절규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11초

[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또 머뭇거렸다. 취재하면서 요즘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은 적은 없었다. 모두 개성공단 탓이다. 부도 직전에 몰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에게 이것저것 캐묻기가 참 미안했다. 마치 인공호흡기를 찬 중환자를 대상으로 특종이라도 하겠다며 채근하는 것 같아서 일 게다.


개성공단을 둘러싼 소식은 온통 침울한 내용뿐이다. 북한은 남한 정부의 적대행위가 계속되면 남북대화나 관계 개선은 절대 없다고 엄포를 했다. 공장을 떠나지 못하고 끝까지 남아 있는 우리 근로자에게 전해줄 식자재나 의약품 반입까지 막았다. 그렇다 보니 범 중소기업계가 추진 중인 22일 방북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다간 금강산처럼 개성공단을 압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들린다.

문득 북한의 근로자 전원 철수 조치 하루 전 개성공단 대탈출 조짐(본보 4월8일자)이란 기사를 썼던 것이 떠올랐다. 지난 3일 북한의 개성공단 진입금지 조치 이후 생산물량을 제3 공장으로 돌렸거나 검토를 하고 있다고 답했던 입주기업 대표들이 지금쯤 철수를 검토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벌써 개성공단의 기계 소리가 멈춘 지 11일째니 말이다.


머뭇거리다 한 입주기업 A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북한의 대중가요 '반갑습니다'가 컬러링으로 들렸다. 순간 수화기를 내릴까 고민하는 찰나 A 대표의 지친 목소리가 들렸다.

용기를 냈다. "정말 철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2004년 군부대 옆 허허벌판, 막막했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동문서답이었지만 순간 먹먹해졌다.


시범사업 부터 함께한 개성공단은 A 대표의 전부였다. 그는 2004년 당시 마지막이란 절박함에 개성공단에 투자했다. 2005년 첫 가동 후 기대 이상의 수익이 나자 2007년 중국 공장을 과감히 처분했다. 그 돈은 고스란히 개성공단 공장 확장에 투입됐다. 그야말로 개성공단에 모든 것을 걸었던 셈이다. 그는 "개성공단 폐쇄 얘기는 여태껏 수차례 나왔다. 그래도 정말 멈춘 적은 없었다. (이번도) 같은 상황일 것이라 여겼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17일째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는 길은 굳게 닫혔다. 설상가상 북한 근로자들까지 모두 철수해 공장 자체가 완전히 멈췄다. 현재 A 대표의 공장에는 남한 근로자 5명만 머물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비상 식자재마저 떨어진다면 이들도 돌아올 수 밖에 없다. A 대표의 전부인 개성공장이 폐허로 바뀌는 건 시간 문제인 셈이다.


그는 지금 공장을 다시 가동할 방법을 찾기 위해 남북관계 전문가를 만나 조언을 구하고 있지만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며 답답해 했다. "개성공단에서 50년 동안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모든 것을 걸었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직원들과 협력업체 직원들은 어떡하느냐"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A대표 처럼 개성공단은 123개 입주 기업인과 임직원, 협력사들에 '삶의 터전이자 생명선'이다. 남북관계가 점점 극단적으로 치달으면서 개성공단은 폐쇄 갈림길에에 섰다.


통화가 끝날 무렵 A대표는 "아직은 철수라는 말을 꺼낼 때가 아니다"고 했다. 절박함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A대표가 남북당국의 입에서 듣고 싶은 말이 바로 이 것일 게다.




이은정 기자 myb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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