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해마다 여론의 뭇매를 맞는 아파트가 있다. 한때 '오세훈 아파트'라고 불렸던 SH공사(서울시 산하기관)의 장기전세주택(시프트ㆍSHift)이 그 주인공이다. 시프트는 오세훈씨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2007년 처음 공급됐다. 이제껏 서울에서만 2만여가구가 공급됐으니 적지 않은 시민들이 그동안 혜택(?)을 본 셈이다.
그런데도 시프트는 지난 7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논란은 다양했고 그중 어떤 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서울시민들의 세금으로 억 단위의 목돈을 쥔 중산층에게 특혜를 주는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임대주택'이라거나 '공급가격이 지나치게 싸다(혹은 비싸다)'거나 '임차보증금을 너무 많이 올린다'는 것이다.
시프트 단지 주차장에 수입자동차가 즐비하다는 제보가 있을 만큼 '공급기준이 흐리멍덩하다'고 얻어터지기도 하고 '아파트 품질이 형편없다'며 카메라 고발을 당했다. 때로는 지역주민들로부터 천대받기도 했다. 내 뒷마당에서는 안 된다는 '님비(NIMBY)현상' 말이다.
이 중 대표 메뉴가 공급가격 논란이다. 달력을 2009년으로 넘겨보자. 당시 서초구 반포자이 아파트 단지에 시프트가 공급됐다. 공급가격은 그 단지 전세시세의 80%가 넘지 않는 선이었다.
잠실 재건축 아파트단지 입주로 강남에 전세물량이 넘쳤고 금융위기 탓에 전세가격이 하락하면서 역전세난이 발생하던 때였다. 당시 반포자이 시프트에는 '임대주택 치곤 너무 비싸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2년 후에 생겼다. 그사이 강남지역 전세가격이 폭등하면서 주변 전세시세가 곱절 가까이 뛰었다. 그러면서 이번엔 시프트가 '반값 아파트'가 돼 버린 것이다. 시프트는 2억~3억원짜리 아파트 전세를 얻을 형편이 되고 강남 사교육비를 감내할 수 있는 중산층에게 반값 혜택을 준다며 다시 얻어맞았다(반포자이 아파트를 예로 든 것일뿐 서울시내에 비슷한 사연을 가진 단지가 많다).
시프트 임차보증금은 1년에 최대 5%까지 올릴 수 있도록 돼 있다.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조건인데 현재 가격이 반값이라면 재계약 때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정한 최대 한도로 임차보증금을 올리더라도 주변시세의 55%가 되는 것이다.
만약 강남 전세가격이 현재 시세를 유지한다면 시프트는 여러 군데서 꾸준히 욕먹을 수 있는 조건을 완벽히 갖추게 된다. 한쪽에서는 반값 공급으로 특혜를 주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다른 한편에서는 서울시가 서민들을 상대로 2년 마다 가혹한 수준(최대 10%)의 임차보증금 인상을 한다며 뒤통수를 잡게 되는 구조다.
그렇다고 서울시 공무원들이나 SH공사 임직원들이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요동치는 시장을 제도가 따라가긴 쉽지 않다.
물 새는 아파트에 카메라를 들이댔기에 품질이 개선되고 있고 공급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난타했기에 입주기준이 바뀌었다. 시프트를 통한 소셜믹스 발상도 꾸준한 논쟁과 고민 끝에 나온 결과가 아니겠는가. 청약 경쟁률이 수십, 수백 대 일을 기록하는 것을 보면 시프트는 여전히 인기가 좋다. 가끔은 칭찬도 해주자는 이야기다.
김민진 기자 asiak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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