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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일 만의 '이천수 선발 복귀전'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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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일 만의 '이천수 선발 복귀전'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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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18일 인천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와 전남 드래곤즈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3 7라운드. 공개된 선발 출장 명단은 놀라웠다. 10번 이천수. 국내무대 복귀 세 경기 만이자 J리그 오미야에서 뛰던 2011년 11월 26일 이후 508일만의 선발 출전이었다.

예상과 달리 이천수는 풀타임을 소화했다. 왼쪽 공격수로 나서 팀 공격을 이끌고 세트피스에선 전담 키커를 맡아 총 11차례 킥을 했다. 전성기의 기량은 아니었다. 킥의 정확도나, 돌파의 예리함은 예전만 못했다. 아깝게 기회를 놓치는 상황이 반복됐고, 결국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다.


약 1년 5개월만의 선발 복귀전. 더구나 상대는 과거 물의를 일으켰던 옛 소속팀 전남이었다. 감회가 남다를 법 했지만 그는 경기 뒤 "솔직히 어떻게 뛰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천수의 인터뷰와 그를 지켜본 감독, 기자, 동료, 관계자들의 관찰을 바탕으로 특별했을 90분을 재구성해봤다. 이천수의 시선으로.

킥오프
경기 시작 5분 전. 그라운드 입구에 양 팀 선수단이 도열했다. 전남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좋든 싫든 어떤 감정이 느껴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무덤덤하다. 그저 이기고 싶다. 그냥 여느 때 같은 정규리그 경기라 생각하고 편하게 뛰어야겠다.


얼마만의 선발 출장인가. 지난 10년간 수없이 서왔던 자리지만 감회가 남다르다. 지난 교체출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K리그 첫 경기였던 2002년 수원전, 2002 한·일월드컵 독일과의 4강전, 4년 전 페어플레이기를 들고 입장했던 경기 정도가 여기에 비할 수 있는 경험인 것 같다.


508일 만의 '이천수 선발 복귀전' 재구성


사실 색다른 점은 하나 더 있다. 보통 어린이들이 나서는 에스코트를 이날은 여고생들이 맡았다. 앗, 내 옆에 선 여학생 키가 나와 비슷하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그 순간 입장. 경기장에 K리그 클래식 앤섬이 울려 퍼지고, 걸음을 뗄 때마다 녹색 그라운드가 시선에 차오른다.


문득 이 자리에 다신 설수 없을 줄 알았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은 당당히 선발로 출전한다.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즐겁다. 오늘 꼭 '축구선수 이천수'를 보여주고 싶다.


전반전
오늘 포지션은 왼쪽 공격수다. 앞선 경기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은 적이 있지만, 신인 (이)석현이가 워낙 상승세라 측면에서 뛰게 됐다. 김봉길 감독님은 포지션에 국한되지 말고 자유롭게 뛰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잔디 상태가 썩 좋지 않다. 추운 날씨 탓에 잔디가 미처 다 올라오지 못한데다 초저녁 이슬까지 내려 미끄럽다. 둥근 스터드의 축구화를 신어 더 그런 것 같다.


정신없이 뛰던 전반 20분 첫 코너킥이 나왔다. 오늘 모든 세트피스의 전담키커는 나다. 공교롭게도 전남 원정 서포터즈 앞에서 코너킥을 차게 됐다. 예상대로 쏟아지는 야유. 괜찮다. 내가 미워서라기보다 전남을 응원하는 분들이니까. 4년 전엔 나를 위해 소리쳐주고 걸개도 걸어주셨던 분들이다. 그 덕분에 지금 나도 뛸 수 있는 것 아닐까.


508일 만의 '이천수 선발 복귀전' 재구성


오히려 지금 문제는 내게 있다. 연습 때만큼 킥력이 나오질 않는다. 확실히 실전은 다르다. 관중이 있으면 더 긴장되기도 한다. 잔디를 많이 타는 편인데 유독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선 프리킥으로 골을 넣은 적이 없다. 그런데 인천 홈경기장에 깔린 잔디는 상암과 같다. 괜히 신경이 더 쓰인다. 전반 25분 프리킥을 얻었다. 유독 좋아하는 위치. 수비벽 위로 살짝 감아 찼는데 생각보다 낙차가 크질 않다. 훌쩍 크로스바 위로 날아가는 공에 내 자신이 야속하다.


하프 타임
라커룸에 들어오자 감독님은 계속 뛸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당초 전반 45분 정도만 뛰게 할 계획이셨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아직 체력이 충분하다고 말하자 "그럼 해보라"며 믿음을 주셨다. 일단 축구화부터 바꾸자. 잔디가 생각보다 훨씬 미끄러워 뛰기가 힘들었다. 바로 알루미늄 재질의 일자 스터드가 박힌 축구화로 갈아 신었다.


동료들과도 전반전에 맞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김)남일이 형의 좋은 침투 패스에 몇 차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건 못내 아쉽다. 후반전엔 꼭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 이왕이면 공격 포인트도 올리고…아, 물론 골을 넣더라도 세리머니는 안 할 생각이다. 그건 전남 구단과 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니까.


후반전
감독님이 나를 계속 기용한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전남이 수비적으로 나온 상황에서 골을 넣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때 세트피스에서 골이 터져준다면 경기는 쉽게 풀릴 수 있다. 오늘따라 기회도 많이 난다. 코너킥과 프리킥을 합쳐 벌써 열 번 가까이 찬 것 같다.


후반 15분 또 한 번의 프리킥이 주어졌다. 이번엔 위치가 더 좋다. 내가 좋아하는 골대 정면 아크 부근. 잘만 감아서 차면 충분히 골도 넣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이번에도 공이 떴다. 생각했던 궤적을 전혀 그리지 못했다.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든다.


508일 만의 '이천수 선발 복귀전' 재구성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한쪽 다리에서 쥐가 났다. 1년 반만의 선발 출장이었으니 무리일만 했다. 이럴까봐 마그네슘도 챙겨 먹었는데…. 전광판을 보니 후반 30분이 지나고 있다. 이제부턴 정신력이다. 틈날 때마다 발끝을 당겨주고, 공이 왔을 땐 이를 악물고 뛰었다. 죽을 만큼 힘든 순간 한 발 더 뛰자는 생각을 했던 예전처럼.


상대 수비수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초반보단 지금 이 시간대에 수비 뒷공간에 허점이 나기 마련이다. 내가 가진 기술이 발휘되기 좋은 환경이다. 절대 겁먹을 필요가 없다.


후반 막판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겨 뛰어봤다. 갑작스런 내 스위칭 플레이에 상대의 당황한 기색이 느껴진다. 잠시 내 앞에 수비가 헐거워졌고, 그 순간 저 멀리 (김)병지형과 골대 사이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가 꽤 있지만 해볼 만했다. 있는 힘껏 오른발로 슈팅을 날렸다. 꽤 잘 맞았는지 날아가는 궤적이 좋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병지형이 몸을 날려 공을 쳐냈다. 전광판 시계는 벌써 후반 45분. 아, 이렇게 경기가 끝나는구나. 아쉽다.


508일 만의 '이천수 선발 복귀전' 재구성


경기 후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선수들과 악수를 나눴다. 전남 선수들에겐 수고했다는 인사를, 팀 동료들에겐 미안하단 말을 했다. 좋은 기회 몇 차례만 잘 살렸으면 팀도 이기고 후배들한테 승리수당도 안겨줄 수 있었을 텐데.


곧바로 전남 서포터즈 석 방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인천 소속이지만, 전남 시절에도 자부심을 갖고 뛰었다. 또 저분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그라운드 복귀가 가능했다. 예전의 앙금이 완전히 사라질 수야 없겠지만, 고마운 마음만큼은 꼭 전하고 싶었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사이 격려의 박수가 들려왔다. 괜히 뭉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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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반대편 홈 서포터즈에도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궂은 날씨에도 찾아줘 내 이름을 연호하고 응원해줘서 감사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홈경기인데 아직 승리를 선물하지 못했다. 쉽지 않겠지만 20일에 열릴 전북전에선 뭔가를 꼭 보여드리고 싶다.


사진=인천 유나이티드 제공




전성호 기자 spree8@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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