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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진화론서 배우는 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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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진화론서 배우는 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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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은 진화론을 주창하는 데 경제학자의 신세를 졌다. 토머스 맬서스였다.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내다봤다. 생존 가능한 수보다 더 많은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이었다. 이 우울한 전망이 어떻게 진화론으로 연결됐을까.


'유레카의 순간'을 다윈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들려줬다. "나는 재미 삼아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 벌이는 싸움'을 인식할 준비가 충분히 돼 있는 상태였다. 그때 갑자기 이런 상황에서는 유리한 변이가 보존되고 불리한 변이는 도태되는 경향이 있을 것이며, 그 결과 새로운 종이 형성될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사례는 창조가 이루어지는 계기를 보여준다. 무엇이 창의력을 꽃피우는가 하는 물음에는 정답이 없다는 게 다수설이다. 다만 창의력이 싹트는 토양에 관해서는 한 가지 이론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그 이론은 이를테면 '교류에 의한 창조론'이다. 다윈이 전혀 다른 영역에서 영감을 얻은 것처럼, 지적인 교류가 창조활동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다윈이 경제학 책을 읽은 건 그가 유별나서가 아니었다. 19세기 영국 지식인들은 모임을 만들어 전문영역의 칸막이를 열고 지식을 주고받았다. 대표적인 모임이 '루나 소사이어티'였다. 지식인, 과학자, 기업가 등이 이 모임에 나왔다. 다윈의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둘 다 루나 소사이어티의 일원이었다. '다윈은 루나 소사이어티가 낳은 인물'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그런 지적인 토양의 힘을 강조한 것이다.

'교류에 의한 창조론'을 실행에 옮겨 성과를 낸 인물이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 잡스는 1986년에 루카스필름의 컴퓨터그래픽 부문을 인수해 픽사로 이름을 바꾸고 별도 회사로 설립했다. 픽사는 1995년 '토이스토리'를 내놓으며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 시대를 열었다. 이후 '벅스 라이프'와 '토이스토리2' '토이스토리3' '카' 등을 내놓으면서 성가를 드날렸다.


픽사 사옥은 원래 3개의 별도 건물로 설계됐다. 한 건물에는 컴퓨터 엔지니어, 다른 건물에는 애니메이션 제작자, 마지막 건물에는 감독과 편집자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이 일하도록 한다는 구상에 따른 설계였다. 잡스는 여러 영역의 사람들이 한데 어울리게끔 설계를 변경했다. 중간 지점에 휴게실, 피트니스센터, 식당을 배치했다. 특히 픽사 전체에 화장실을 두 개만, 이 중간 지점에 설치하도록 했다. 당연히 불편이 뒤따르는 조치였다. 멀리 떨어진 사무실에서는 화장실에 오기까지 15분이 걸렸다.


픽사 사람들은 연달아 흥행작을 터트린 요인 중 하나로 '화장실 대화'를 꼽는다. 손을 씻으며 다른 분야 사람들과 나눈 '대단한 대화'가 협업과 창의성을 촉진했다는 얘기다. 이게 바로 잡스가 겨냥한 효과였다. 잡스는 사람들 사이의 교류가 스파크를 튀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창의적인 일을 잘 수행하도록 하려면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섞여 함께 일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Jonah Lehrer, Imagine: How Creativity Works)


교류에 의한 창조론에는 한 가지 조건이 전제된다. 해당 영역이 매우 집적돼 밀도가 높아야 한다는 조건이다. 자신의 영역에서 내공을 단단히 쌓지 않은 상태라면 다른 영역의 전문가와 교류해본들 아무런 보람도 얻지 못한다. 요컨대 창조의 두 가지 필요조건은 '집적'과 '교류'다.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집적이 이루어져, 교류와 융합의 효과가 기대되는 분야가 의료다.


박근혜정부가 전략으로 제시한 창조경제를 두고 이론이 분분하다. 이 대목에서는 확실한 게 있다.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성과를 내려면 민간이 주도적으로 집적하고 자발적으로 교류해야 한다. 정부는 제도적인 칸막이를 없애고 새싹 단계의 활동에 북을 돋워주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나서서 창조경제를 주도하려고 한다면 또 하나의 소극(笑劇)이 빚어질지 모른다.






백우진 정치경제부장 cobalt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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