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다 보면 익명으로 했더라도 "아, 이게 누구 글이지"하는 경우가 있다. 작가 성석제가 그런데, 그의 글은 수필이든 소설이든 티가 난다. 말에 말투가 있듯 글에도 사람의 색깔 같은 게 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 글의 정체성이란 면에서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상투성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
정작 글을 쓰는 필자는 스스로의 문체를 잘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굳이 이를 의식해서 피하려고 하면 오히려 헛발질을 하니, 피하려고 해서 피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참 어렵다.
기자들의 스트레이트 기사에서도 독특한 고유의 문체가 있다. 스타일이라고까지 하긴 그렇고 이를테면 습관 같은 것이리라. P기자는 모든 기사에 특정한 리드를 고집한다. M기자는 기사의 날짜를 주어 바로 뒤에 넣는가 하면, 또 C기자는 술어 바로 앞에 넣는다. '~ 하는 것'이란 표현을 즐겨 쓰는 기자도 있고, 스트레이트 기사건 박스기사건 칼럼이건 모든 기사에 은유와 직유의 표현을 잔뜩 집어넣는 기자도 있다.
신문의 이 코너를 관장하는 모부장이 "기존에 보여준 페르소나(인격) 말고 살짝 자기를 바꿔서 글을 하나 써달라"고 주문한다. 글의 문체를 바꾸기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페르소나를 바꾸라니?
너무 어려운 주문이라고, 너무 많은 걸 요구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더니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경제신문에 실리는 칼럼들이 좀 딱딱하고 어려우니 독자들의 마음이 쉴 수 있는 쉼터 같은 지면이 필요하다. 그런 글들을 쓰다보면 필자 본인도 힐링이 되지 않겠느냐? 헐렁헐렁하게 잡문잡설을 쓰면서 세상을 여유롭게 보는 것도 나이 들면서 할 수 있는 수행이라 할 수 있지 않느냐?" 조목조목 옳은 말씀. 거부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나온 결과물이 오늘의 초동여담이다.
나처럼 팩트와 직설로 살아온 인생이 "흐르는 강물 같은" 글을 쓰려면 정말 100일 기도라도 드려야 할 판이다. 무르팍이 너덜거려야 도가 통하지 않겠는가. 존경하는 그 부장께선 이런 먹먹한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5분 전에 말씀해놓고 원고 언제 나오느냐고 재촉이시다. 모르겠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이 서 있는 내 글들을 반듯한 칼럼으로 바꿔놓든지, 아니면 내가 진짜로 취권이라도 배워 헐렁해지든지. 둘 중 하나렷다. "나쁜 사람, 나쁜 사람."
글=여하(如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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