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좋은 경험이었지만 다신 겪고 싶지 않네요."(최용수 FC서울 감독)
2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베갈타 센다이(일본)의 2013 AFC챔피언스리그 E조 3차전. 서울이 2-0으로 앞서가던 후반 38분, 경기 최대 변수가 벌어졌다. 골키퍼 유상훈이 센다이 공격수 윌슨에 파울을 범하며 페널티킥을 내줬다. 설상가상 유상훈은 퇴장 명령까지 받았다. 서울은 대기 명단에 김용대가 있었지만 쓸 수 없었다. 불과 몇 분 전 세 장의 교체 카드를 모두 써버렸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경기장 전체가 술렁였다. 졸지에 필드 플레이어 한 명이 대신 수문장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 최용수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후반 교체 투입된 수비형 미드필더 최현태에게 '특명'을 부여했다. 최현태는 부랴부랴 김용대의 골키퍼 유니폼과 장갑을 건네받은 뒤 골문 앞에 섰다.
이어진 윌슨의 페널티킥. 최현태는 용케 슈팅 방향을 정확히 읽었다. 다만 손이 아닌 발을 뻗었다. 전문 골키퍼가 아닌 그에게 제대로 된 방어 동작을 기대하기란 애당초 무리였다. 공은 오른쪽 골망을 출렁였고, 서울 선수단과 홈 관중들의 가슴도 철렁 내려앉았다.
2-1로 앞서있는 점수는 무의미했다. 조금만 강력한 크로스나 슈팅이 나온다면 최현태가 막아내기 힘들었다. 추가시간 포함 남은 10여분을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앞선 80여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긴장감이 그라운드를 휘감았다. 이후 센다이는 어떻게든 골문 근처로 공을 보내려했고, 서울은 필사적으로 공을 위험 지역 밖으로 걷어냈다. 최전방 공격수 데얀까지 수비에 가담할 정도였다.
물론 가장 고역인 건 최현태였다. 축구화를 신은 이래 난생 처음 서보는 자리. 위치 선정조차 힘들어 보였다. 최현태가 조금 앞쪽으로 걸어 나오자 서울 벤치에선 난리가 났다. 최용수 감독은 골문 바로 앞으로 물러나라며 큰 손짓을 보냈다. 그 와중에 '선방쇼'도 있었다. 후반 40분 높은 궤적의 크로스를 펄쩍 뛰어올라 상대 공격수 바로 앞에서 두 손으로 잡아냈다. 득점 장면보다도 더 큰 함성이 경기장에 울려 펴졌다.
마침내 종료 휘슬. 선수단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기뻐했다. 그 가운데 최현태는 다리 힘이 풀린 듯 그대로 주저앉았고, 한참을 무릎 꿇은 채 있었다. 동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달려가 최현태를 안아줬고, 관중들도 큰 박수와 함성으로 그를 격려했다. 파란만장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골키퍼 체험이었다.
최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최현태는 우리 팀에서 멀티 포지션 능력을 갖춘 몇 안되는 선수"라며 "상대가 제공권을 활용하지 않을까란 생각에 김진규도 생각했지만, 결국 최현태가 더 적합할 거라 판단했다"라고 배경을 밝혔다. 이어 "익숙하지 않은 자리에서도 다재다능함을 보여줬다. 나쁜 판단은 아니었다"며 "좋은 경험이었지만 다신 겪고 싶지 않다"라고 웃어보였다.
안도한 수장과 달리, 최현태는 경기 후 믹스트존 인터뷰조차 정중히 거절한 채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죄책감 때문이었다. 사실 페널티킥 상황 직전 위험 장면은 자신의 실수에서 빚어졌다. 결국 그로 인해 유상훈이 퇴장당했단 생각이 마음을 짓눌렀다. 골키퍼로서의 이색 활약은 그 다음 문제였다.
최현태는 구단 관계자를 통해 "그동안 많은 준비를 하고도 팀이 승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잦았다"라며 "오늘도 나 한 사람의 실수로 인해 결과가 잘못될까봐 걱정이 많았다"라고 전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공이 골문 근처로 오지 못하게 막아준 팀 동료들을 보면서 정말 고맙더라"라며 "마지막 휘슬이 울리는 순간 안도했다"라고 말했다. 비록 아찔한 경험이었지만, 최현태와 서울에겐 동료를 위한 헌신과 팀 정신을 다시금 새길 수 있는 값진 경기였다. 최근 2무2패의 리그 부진을 털어내 줄 한 달만의 승리는 덤이었다.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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