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26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반기 통화정책 증언에서 강조한 것은 지난주 논란이 됐던 3차 양적완화가 아니라 '시퀘스터(연방정부 재정지출 자동 삭감)' 해법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버냉키 의장은 의회 증언에서 재정적자 감축이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급격한 재정지출 삭감은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에게 지난주 논란이 됐던 통화정책 완화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이른바 '3차 양적완화 속도조절론'은 큰 의미가 없는 논쟁거리였다. 버냉키 의장은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며 현재 추진 중인 3차 양적완화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냉키 의장은 FRB의 혁신적 통화정책이 재정정책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경기하강 위험을 상쇄하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현재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는 시퀘스터이며 곧 미 정부와 의회가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버냉키 의장의 바람과 달리 민주·공화 양당은 이날도 의회에서 계속 대치했다. 시퀘스터 해법 논의가 전혀 진전을 보지 못한 것이다. 아예 양 당 상원의원들은 같이 죽자는듯 시퀘스터 발동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해리 리드 의원은 세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시퀘스터가 시행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화당이 이른바 버핏세로 불리는 부자 증세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시퀘스터 발동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공화당 소속 미 하원의장인 존 베이너는 상원에서 시퀘스터 해법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키면 하원은 검토에 나설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민주당이 요구하는 세금 인상은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공화당 상원의원 로이 블런트(미주리)는 노골적으로 시퀘스터가 발동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켓워치는 민주·공화 양 당이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소중한 하루를 소진하고 말았다고 꼬집었다.
버냉키 의장은 의회 증언에서 공화당 의원들의 양적완화 부작용 가능성 지적에도 적극적으로 항변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할 시기가 왔을 때에는 현재 불어난 자산이 FRB에 대규모 손실을 입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버냉키 의장은 FRB가 통화정책에 따른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고 항변했다. 또 전체 경기가 살아나면 FRB가 그동안 감수해왔던 리스크의 부담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양적완화가 자산 거품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FRB의 통화정책이 주식시장의 거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니며 주식 거품에 대한 증거는 많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물가상승률은 낮고 물가상승 기대감도 잘 통제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며 물가 상승 압력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적완화에 따른 인플레 부작용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평소 디플레이션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던 버냉키 의장은 최근 일본이 발표한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에 대해서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일본의 정책이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것인만큼 이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박병희 기자 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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