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판매로 회사 골탕먹인 후 수수료 챙겨 잠적
감독규정 변경 등 대책나서..법 개정엔 시일 걸릴 듯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중견 보험사인 A 생명보험사는 지난해 말 발칵 뒤집혔다. A사를 콕 찍어 금융감독원에 제기된 민원이 갑자기 폭증했기 때문이다. 내막은 더욱 기가 막혔다. A사 한 지점에서 근무한 보험설계사가 자신이 판매한 모든 상품에 대해 "내가 충분히 정보를 알리지 않고 판매했다"는 확인서를 고객들에게 써주었던 것. 불완전판매의 경우 계약자가 납부한 보험료를 회사가 모두 돌려줘야 한다는 점을 해당 설계사가 악용한 것이다. 회사가 뒤늦게 진상파악에 나섰지만 설계사는 이미 수당을 챙기고 회사를 떠난 뒤였다.
최근 들어 일부 보험설계사들로 인해 보험사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소비자보호 강화라는 금융권의 최근 추세를 교묘히 이용해 수수료만 받아 챙기는 '먹튀' 설계사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상품을 판매할 때 "해약해도 전부 돌려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설득해 가입토록 한 뒤 몇 개월이 지난 다음 "상품 설명하는 과정에서 잘못이 있었다"고 자인서를 써주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 설계사를 잘못 관리한 보험회사가 모든 책임을 떠안고 보험 가입자에게 보험료를 돌려줘야 한다. 회사가 설계사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하거나 이미 지급한 수수료를 반환받을 수 있지만, 그 전에 그만둘 경우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은 사실상 없다. 가입자는 보험료를 돌려받고 설계사는 판매 수수료를 챙기는 구조다. 하지만 보험사는 수수료만큼을 떼이게 된다.
한 생보사 CEO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 도입된 법을 악용하는 설계사로 인해 회사까지 골탕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자 보험업계는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같은 방식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설계사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보험사기죄의 경우 2년간 설계사직을 박탈당하지만 수수료를 떼 먹는 이같은 방식은 보험 사기로 규정하기도 애매하다.
이와관련, 생명보험업계는 최근 '요주의 설계사 명단'을 작성키로 했다. 협회 관계자는 "생보사 전속 설계사만 14만명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인원을 일일이 살피기 어렵다"면서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 사전에 걸러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감독규정 변경으로 가능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역시 공감을 나타냈다. 다만 법 개정이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점에서 시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고객과의 접점에 있는 설계사를 바로잡지 못하면 보험업에 대한 이미지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면서 "보험업계 전체의 신뢰회복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최일권 기자 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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