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PR 이적' 윤석영, 성공 기준은 제2의 이영표

[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열 한 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탄생했다. 윤석영(전남)이 23일 잉글랜드 퀸즈파크 레인저스(QPR)행을 선언했다. 시선은 선구자의 발자취를 좇는다. 이영표(밴쿠버)가 지나온 바로 그 길이다.

이영표는 한국 선수 가운데 해외 무대에서 가장 성공적인 선수 경력을 보낸 수비수다. 그는 2003년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으로 PSV 아인트호벤(네덜란드)에 이적하며 유럽에 첫발을 내딛었다.

함께 입단했던 박지성(QPR)이 초반 어려움을 겪은 것과 달리, 이영표는 데뷔와 동시에 팀의 주축으로 우뚝섰다. 3년간 네 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뒤 2005년에는 잉글랜드 토트넘 유니폼을 입었다. 토트넘에서도 데뷔 첫 해 31경기를 소화하며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도르트문트(독일)와 알 힐랄(사우디)을 거쳐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밴쿠버에서 황혼기를 보내고 있다.

대표팀에서도 이영표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한국은 2000년대 치른 세 차례 월드컵에서 측면 수비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늘 한결같이 제 몫을 해낸 이영표 덕분이었다. 팀 상황에 맞춰 왼쪽과 오른쪽을 가리지 않고 활약을 이어갔다. A매치 127경기(5골) 출장으로 한국 선수로선 7번째로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출장)에 가입했고, 지난 2011년 1월 카타르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태극 마크를 내려놓았다.

이영표의 영리한 플레이는 분위기를 한국으로 가져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제 유럽 무대에 첫발을 내딛는 윤석영에게 이영표의 화려한 선수 경력은 기준 그 자체다. 스스로도 "이영표 선배는 잉글랜드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둔 훌륭한 선배"라며 "그만큼 쫓아갈 수 있도록 집적 부딪히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성장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첫 번째 목표는 주전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일. 이영표도 2003년 아인트호벤 입성 당시 쉽지 않은 경쟁을 거쳤다. 당시 아인트호벤의 왼쪽에는 '백전노장' 얀 하인츠(덴마크)와 '유망주' 윌프레드 보우마(네덜란드)가 있었다.

동양에서 갓 날아온 신예로선 다소 벅찰 수도 있던 상황. 이영표는 초반 몇 경기에서 스스로 가치를 입증하며 살아남았다. 결정적 계기는 그해 3월 아약스와의 라이벌전. 안디 반 데르 메이더를 철저히 봉쇄하며 2-0 완승을 이끌었다. 경기 최우수선수도 그의 몫이었다. 자연스레 이영표는 왼쪽 풀백의 주인이 됐다. 이후 하인츠는 은퇴했고, 보우마는 중앙으로 보직을 이동했다.

마찬가지로 윤석영도 초반 활약이 중요하다. QPR의 왼쪽엔 뚜렷한 주인이 없다. 조세 보싱와는 해리 레드냅 감독과 갈등을 빚어 사실상 전력에서 제외됐다. 아르망 트라오레는 부상을 안고 있고, 이에 파비우 다 실바를 왼쪽에 세우고 있다. 파비우는 오른발 잡이여서 오른쪽에서도 뛸 수 있다. 윤석영이 첫 몇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면 단번에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셈이다.

박지성과 함께 뛴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이영표도 아인트호벤 시절 박지성과 동고동락하며 유럽 무대에 연착륙했다. 지동원도 최근 아우크스부르크 임대돼 구자철과 함께 뛰며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윤석영에게 '대선배'는 존재만으로도 큰 버팀목이다. 아울러 프로선수로서 박지성의 자기관리를 보고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윤석영에겐 큰 장점이다.

이처럼 주어진 환경은 이영표가 유럽 무대에 첫 발을 디딜 때와 흡사하다. 이제 윤석영 본인의 몫이다. 이영표가 그랬듯이 그가 소속팀에서 빠르게 입지를 다지고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면 대표팀으로서도 호재다. 2년 넘게 '공백'이나 다름없는 이영표의 빈자리를 메워줄 확실한 카드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처음 A매치에 데뷔했다. 이영표처럼 향후 대표팀의 10년을 책임질 선수란 의미다. 윤석영은 이영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