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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악연···고개 숙인 노정연 vs 당당한 조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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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고 노무현 대통령의 딸과 조현오 전 경찰청장(57)의 재판이 같은 건물에서 한시간 간격으로 열리는 기묘한 악연이 연출됐다.


비가 흩뿌리던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서관에서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기소된 노정연씨에 이어 노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조 전 경찰청장의 재판이 잇따라 열렸다.

선고시간보다 20여분 앞서 법정에 도착한 정연씨와 그의 남편 곽상언 변호사는 차분한 표정으로 복도에서 대기했다. 마침내 법정 문이 열리자 정연씨와 곽 변호사는 착잡한 표정으로 피고석에 자리잡았고 방청석은 20여명의 기자들과 방청객들로 북적였다.


1시50분. 법정에 들어선 형사18단독 이동식 판사는 피고인의 참석여부만 확인하고 빠르게 판결문을 읽어내려 갔다. 이 판사는 정연(37)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정연씨는 2009년 1월 미국 뉴저지 포트 임페리얼 아파트 매매대금 중 일부인 현금 13억원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채 불법 송금한 혐의를 받았다.

이 판사는 "전직 대통령의 딸로서 고가 아파트를 구입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이같은 불법행위를 한 것은 비난가능성이 크다"면서도 "다만 정연씨가 범죄전력이 없고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이 사건 이후 외국환거래법이 개정돼 처벌이 완화된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판결선고를 듣는 정연씨의 표정은 담담했다. 곽 변호사는 시종일관 정연씨의 표정을 살피며 그를 챙기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선고 후 출입구에서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을 피해 법정과 연결된 다른 통로를 통해 법원을 빠져나갔다.


그로부터 1시간 후 같은 건물 5층에서는 형사12단독 이상호 판사의 심리로 조 전 경찰청장의 3회 공판이 열렸다. 조 전 청장은 서울경찰청장으로 재직중이던 지난 2010년 3월 경찰 내부 강연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이 무엇 때문에 사망했나. 뛰어내리기 전날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되지 않았느냐"고 발언해 유족 등으로부터 고소·고발됐다.


이날 증인으로 예정돼 있던 전 청와대 행정관 박모씨 등 2명이 불출석신고서를 제출하고 나오지 않아 재판은 한시간여 만에 끝났다. 조 전 청장의 변호인 측은 이 행정관들의 계좌가 차명계좌였음을 입증하기 위한 심문이 필요하다며 박씨 등을 강제구인해줄 것을 요청했다.


조 전 청장은 변호사를 한명 더 선임해 이날 총 3명의 변호인이 자리에 참석했다. 조 전 청장 측 변호인들이 차명계좌의 존재여부와 노 전 대통령의 사망을 연결지으려들 때마다 방청석에선 실소가 흘러나왔다. 조 전 청장은 등을 방청석으로 향한 채 이를 외면했다.


재판이 끝날 무렵 발언기회가 주어지자 조 전 청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난 공판 때 말한 내용이 정리가 잘 안된 것 같아 노파심에서 말한다"며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행정관의 계좌가 차명계좌 추적의 단서가 된 것은 분명하다. 설사 차명계좌가 없다손 치더라도 소득수준에 비춰 많은 금액이 입금되고 한꺼번에 사용된 것 자체로 거액의 차명계좌로 볼 수 있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고개 숙인 노정연씨와 당당한 조현오씨,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박나영 기자 boh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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