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미국 자동차산업의 중심지 디트로이트는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독무대였다. 여성들의 사회진출 폭이 넓어지면서 자동차업계에도 여성들이 조금씩 진출했지만 ‘유리천장’을 뚫고 최고위직까지 진출하기는 쉽지 않았다. 미국 최대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의 메리 바라(Mary Barra, 50) 수석 부사장은 거친 남성들의 틈바구니를 뚫고 GM의 차기 최고경영자(CEO) 후보로 부상한 인물이다.
미 경제주간지 포천은 이달 24일 글로벌 자동차업계에서 손꼽히는 여성 임원이 된 바라 부사장을 집중 조명했다. 사실 바라 부사장이 오늘 이 자리까지 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녀는 인생의 전반을 GM과 함께 해 왔다. 그녀의 아버지는 39년 동안 폰티악 공장에서 선반 제조공으로 일했고 그녀 역시 디트로이트시 외곽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어렸을 적부터 차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의 첫 차는 시보레 ‘시베트(Chevette)’였고 돈을 더 모아 스포츠카 ‘파이어버드(Firebird)’를 사겠다는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녀는 GM연구소(현 케터링대학교)에 산학협동 장학생으로 지원했고 매년 6개월간의 현장 실무과정을 거쳤다. 이 경험은 이후 그녀의 성장 과정에서 큰 밑거름이 됐다. 18세 시절 폰티악 공장에서 봤던 조립생산 과정의 문제점을 통해 이후 2009년 GM의 파산 이후 개혁을 위한 실마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1985년 전기공학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졸업한 뒤 바라는 폰티악 ‘피에로(Fiero)’ 생산라인의 선임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 그녀는 공장 총괄관리자인 팀 리(현 GM 인터내셔널 사업 책임자)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았고, ‘GM펠로우십’ 프로그램에 선정돼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 MBA과정도 수료한 뒤 생산계획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주목받던 또다른 젊은 인재 마크 로이스(Mark Reuss, 현 GM 북미사업부 대표)와 만나 신차종 ‘캐딜락 드빌(Cadillac De Ville)’의 출시작업을 함께 하기도 했다. 로이스는 “그때부터 그녀는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다”고 말했다.
1996년 바라는 잭 스미스 당시 CEO와 해리 피어스 부회장과 함께 일하며 GM의 중국시장 진출을 주도했고 그들의 추천 아래 GM의 그룹 내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총괄하면서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과 사측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에 기여했다. 2009년 바라는 글로벌 인력자원 책임자로 승진했고,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휘청거리는 GM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핵심임원 중 하나로 참여했다. 2011년 1월에는 댄 애커슨 GM CEO에 의해 글로벌 상품개발 수석 부사장 직에 임명돼 경력의 정점을 찍었다. 현재 그녀는 150억달러 규모 예산에 세계 5개 대륙 2만9000명 직원과 130개국 시장의 자동차 디자인·개발을 모두 총괄하고 있다.
32년간 명실상부한 ‘GM인’으로 경력을 쌓은 그녀는 GM이 파산 직전 위기에서 부활하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오랫동안 생산과정에 참여하고 지켜본 경험을 통해 비효율적인 업무관행을 정리하고 혁신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또 토론과 대화를 통해 조직을 이끄는 그녀의 의사소통 스타일은 일방적 위계질서였던 GM의 사내문화를 개혁했다는 평을 받는다. 바라 부사장은 올해 8월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힘있는 여성(Most powerful woman in the world)’ 41위에 꼽혔다.
바라 부사장은 적어도 지금은 애커슨 CEO의 가장 유력한 후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내년은 바라 부사장에게 있어 중요한 시험대에 오르는 해다. 새 픽업트럭 모델과 GM의 수익 대부분을 차지하는 SUV의 새 모델, 시보레 크루즈 같은 경차 등의 출시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에 따라 그녀는 더욱 높이 비상할 기회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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