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최소한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달라는 건데 폭행이 왠말이냐."
최근 한 건설사에 경찰이 출동하게 한 영종하늘신도시 입주자의 하소연은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그의 목 한쪽은 누군가로부터 손찌검을 당했는 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정부의 약속만 믿고 하늘신도시에 입주했는데 국제도시는 커녕 제대로 된 대형마트 하나도 없다"며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정부와 건설업체에 따지러 왔는데 멱살을 잡히고 주먹질까지 당했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폭행 용의자'는 현장에서 이미 자취를 감춘 터라 출동한 경찰들도 난감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 CCTV 녹화테이프 등 현장 증거자료 제출을 요구받은 건설사 측도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며 억울함을 호소할 뿐이었다.
건설사 관계자는 "우리는 시행사와 계약을 맺고 아파트를 건설해 준 죄 밖에 없다"며 "배후시설까지 책임질 수 있는 처지가 아닌데 이런 항의가 들어올 때마다 곤혹스럽다"며 말끝을 흐렸다. 지난 10년 동안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인천 경제자유구역이 빚어낸 이야기다.
지난 2003년 정부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21세기형 글로벌시티로 인천경제자유구역을 성장시키겠다며 국제 비즈니스도시(송도), 동북아 물류허브(영종), 국제금융ㆍ레저도시(청라)로 조성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송도 더 프라우가 4855대1 역대 최고경쟁률을 보인 것을 비롯해 송도 센트로드 최고 경쟁률 331대1, 송도웰카운티 평균 47대1로 청약시장이 폭발할 듯했다. 아파트에 당첨되면 주변 사람들한테 술턱을 내기도 했다.
이랬던 상황이 급변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개발약속이 백지화됐다. 국제도시로서의 면모가 살아나지 않게 된 이유다. 2010년 개교한 채드윅 송도국제학교에 다니는 외국인은 손에 꼽을 정도고, 송도국제도시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000명도 안된다. 청라신도시의 한 외국인학교는 넓다란 평지에 쓸쓸하게 자리하면서 '새로 생긴 형무소'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교통정비계획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인천공항철도 청라역을 2010년 신설하고 수도권과 연결되는 경인고속도로가 직선화된 청라 IC 신설, 제2외곽순환도로 건설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인천공항철도 청라역은 아직까지 착공하지 못하고 있다. 경인고속도로 직선화 사업은 사업 내용이 대폭 축소됐고 청라 IC신설과 제 2외곽순환고속도로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제3연륙교도 정부가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감감무소식이다. 올해 국토해양부 국감에서 야당 의원들이 'LH의 직무유기'라며 집중 포화를 날리기도 했지만, 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의 무책임한 공약에서 출발한 '인천의 꿈'은 수 많은 희생자를 남긴 채 사그러질 위기에 놓였다. 어느 한 낮 건설업체 사옥 앞에서 소란을 피운 영종하늘신도시 입주자의 얼굴이 아직도 어른거리는 이유일지 모르겠다.
조태진 기자 tj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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