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눈치보느라 신평사·증권사 비판 입닫아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국내 자본시장에서 '둠 플레이어(Doom Player·쓴소리 하는 시장 참여자)'의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해당 역할을 맡아야 할 민간신용평사가나 증권사가 평가 대상인 기업 앞에서 작아지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그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주 웅진코웨이 매각을 발표한 웅진홀딩스에 대해 국내 신평사들이 공정하지 못한 목소리를 냈다는 비난이 높아지고 있다. 웅진이 코웨이 매각을 발표한 때는 지난 2월. 이후 코웨이 매각을 둘러싸고 온갖 설이 난무하고 웅진 측은 입장을 수차례 바꿔 시장 안팎에선 “매각 과정이 지나치게 비정상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신평사들은 웅진홀딩스의 불안정한 행보를 평가해야 할 의무를 도외시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매각 발표 직전까지 한국기업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신평사들에서 나온 보고서가 30여개에 달했지만 신평사들은 “매각 자금으로 차입금을 상환하면 이자비용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원론적인 분석으로만 일관했다.
신평사들은 매각 확정발표 일주일을 앞둔 지난 8일에야 부랴부랴 보고서를 내고 웅진홀딩스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낮췄다. “코웨이 매각에 따른 재무구조 개선 효과가 미흡하다”는 게 이유였다. 6개월여간 유지해온 입장을 막바지에 와서야 바꾼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평사의 수익 대부분이 의뢰사인 기업에서 나오니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며 “실적이 악화돼도 등급 하향 조정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최근 포스코 사례도 기업에 약한 증권사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얼마 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Moody's) 등 글로벌 신평사들은 포스코에 대한 등급 강등을 예고했다. 재무건전성이 의심스럽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국내 실정은 달랐다. 지난달 25일 무디스가 포스코 신용등급 하락을 경고한 후 현재까지 국내서 나온 증권사 보고서만 50여개. 이 중 신용등급 사안을 언급하고 이에 우려를 표한 곳은 전무하다.
업계는 둠 플레이어 부재가 결국 투자자는 물론 기업에도 악영향을 끼칠 뿐이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국내 신평사의 신용등급 '상향' 일색에 국내 기업 신용등급은 A 이상이 90%에 육박하는 기형적 구조가 됐고, BBB 이하를 대상으로 하는 하이일드 채권이 급격히 위축됐다는 것이다. 임정민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BBB는 코스닥이나 코스피에서 거래되는 중소·중견기업 수준”이라며 “채권 시장이 A등급 이상을 위주로 돌아가며 그 아래 기업들의 자금조달 능력이 위축됐다”고 지적했다.
이승종 기자 hana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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