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을 끝내는 게 아니고 전환하는 것입니다.” 파업 중단을 결정한 MBC 노조의 정영하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1월 30일부터 시작해 170일 째를 맞은 17일 오전 MBC 노조는 총회를 열어 만장일치의 표결로 파업 중단과 복귀 투쟁을 결정했다. 김재철 MBC 사장은 아직 퇴진하지 않았고 노조는 회사 정상화와 관련해 사측과 일체의 협상 자리를 갖지 못한 채 파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를 두고 포기 혹은 실패라는 평가는 적절치 않거나 아직 일러 보인다. MBC 노조는 지난 6월 29일 발표된 “여야는 8월초 구성될 새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방송의 공적 책임과 노사 관계에 대한 신속한 정상화를 위해 노사 양측 요구를 합리적 경영판단 및 법 상식과 순리에 따라 조정, 처리하도록 협조한다”는 국회 개원 협상 합의문에 따라 김재철 사장의 해임 혹은 자진 사퇴가 사실상 결정될 것을 믿고 파업 중단을 결정했다. 노조 측은 파업과 이를 지지한 국민들의 뜻이 국회에 받아들여졌고 이제는 이를 바탕으로 김재철 사장 퇴진 이후를 위한 준비를 비롯하여 MBC 정상화를 위해 복귀 투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밝혔다.
새로운 방식으로의 투쟁
총회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영하 위원장은 내부적으로는 공정보도에 대한 조합원들의 열망과 자세가 바뀌었고 외부적으로는 근본적인 문제인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방송문화진흥회 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파업의 의의를 평가했다. 결국 ‘공정방송 회복과 김재철 사장 퇴진’을 내건 이번 파업에서 사장 퇴진이 사실상 확보되었다고 본 MBC 노조는 파업으로 인해 실추된 MBC의 경쟁력과 채널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일상 업무 속에서의 투쟁을 결정했다. 공정방송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공정방송협의회의 협약을 철저히 준수하는 것을 통해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감시 기능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재철 사장 체제에서는 공정한 인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후임 사장에게 이를 압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한 겨울에 시작되어 한 여름까지 이어진 170일 간의 길었던 파업은 끝났다. 하지만 MBC 노조의 앞날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우선 김재철 사장이 여전히 퇴진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조합원에 대한 대규모 징계가 내려질 우려가 크다. 실제로 노조가 파업 중단을 밝힌 17일 밤 MBC는 인사이동을 발표했고 이 중 일부에 대해 노조 측은 보복성 인사 조치라고 평가했다. 또한 업무 복귀 후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던 인력들은 물론 파업 기간 동안 사측이 고용한 약 100여 명의 시용 직원들과 함께 업무를 수행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대해 정영하 위원장은 “현 사장이 있는 동안은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다. 방송을 이상한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현 상황은 노조가 복귀한다고 해도 솔직히 크게 바뀔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없다. 편파적인 운영은 일정 부분 업무 복귀 후 저항으로 더 망가뜨리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MBC를 더욱 지켜봐야 하는 이유
총회와 기자회견 이후 < MBC 정상화를 위한 복귀투쟁 선포식 >이 개최되었다. 선포식에는 조합원 당사자들, 이들과 연대하고 지지한 언론노조, 민주노총,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언련 등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지난 파업 투쟁 활동을 정리하고 향후 복귀 투쟁을 선언하는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린 단어는 ‘국민’이었다. 국민의 지지가 있어 170일이라는 최장기 방송 파업을 이어올 수 있었고, 국민의 뜻이 모여 국회에서 합의문을 도출해 김재철 사장 퇴진을 위한 실질적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으며,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파업을 중단하고 복귀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재철 구속을 촉구하는 백만 서명에 단 23일 동안 약 75만 명이 참여했고 세 차례의 대형 콘서트 때마다 시민들의 성금 관람료가 쇄도해 1억여만원의 금액이 모였으며 희망계좌 천원 입금하기 운동에 일주일 만에 무려 3천 5백만원 이상이 입금되었다.
MBC 노조 측은 이 같은 국민들의 지지에 보답하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 최대한 빨리 공영방송 MBC를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재철 사장의 퇴진이 결정된다 해도 현 정권 하에서 후임 사장으로 누가 올지 알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방송의 역할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공정방송을 위한 노력은 이어져야 한다. 파업이 중단되었을 뿐 투쟁이 중단된 것은 아니다. 바로 이 때문에 MBC 구성원들의 노력은 물론 시청자인 국민의 관심과 지지 역시 계속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김재철 사장의 퇴진보다 더 중요한 성과이자 교훈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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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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