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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전설이 꿈꾸는 '100년만의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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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전설이 꿈꾸는 '100년만의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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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 ‘왼발의 마법사’, ‘살아있는 전설’은 라이언 긱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동의어다. 오직 맨유 한 팀에서만 꼬박 22시즌 909경기를 뛰며 163골을 넣었다. 프리미어리그 12회, 챔피언스리그 2회, FA컵 4회, FIFA 클럽 월드컵 1회 등 우승트로피만 33개다. 화려하단 표현조차 부족하고 진부할 만큼 위대한 족적이었다.

그러나 국가대표 경력은 이에 비교조차 못될 정도로 초라하다. 프로 데뷔 직후 19세에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됐지만 35세까지 A매치 출전은 고작 64경기에 불과했다. 조국 웨일즈의 약한 전력이 문제였다. 16년 국가대표 경력에 월드컵은 고사하고 유로 본선 경험조차 없었다. 마크 휴즈, 개리 스피드 등 스타들과 팀을 이끌었지만 번번이 문턱에서 좌절했다. 조 2위 플레이오프에서 러시아에 합계 1-0으로 패했던 유로 2004 예선이 가장 아까웠다. 긱스가 늘 대표팀으로서의 성과가 자신의 선수 경력에 화룡점정이 될 것이라 얘기했던 이유다.


사실 그는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팀에서 뛰었다. 그러나 성인 대표팀은 웨일즈였다. 강호 임에도 특출난 왼발 미드필더가 늘 아쉬웠던 잉글랜드, 웨일즈의 빈약한 전력, 여기에 두 나라 사이 역사적 분쟁까지 끼어들어 긱스의 선택은 늘 ‘특별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몇 년 전 긱스 본인이 밝혔던 이유는 조금 다르다.

“내가 웨일즈를 선택했던 것에 10년 넘게 사람들이 물어온다. 하지만 난 부모님과 조부모님까지 모두 웨일즈 출신이고, 카디프에서 태어난 100% 웨일즈 사람이다. 잉글랜드 국적은 선택 가능한 옵션도 아니었다. 청소년 대표를 잉글랜드로 뛰었지만, 그건 성인 대표팀과 달리 선발 기준이 국적이 아닌 거주지나 소속 학교 기준이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나와 상관없는 나라를 위해 뛰는 것보다는, 단 한 번도 국가대항전에 오르지 못한 채 커리어를 마쳐도 상관없다.”


그의 말대로 긱스는 2007년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다. 올해로 어느 덧 한국 나이로 ‘불혹’ 마흔이었다. 그렇게 '전설'에게 국제무대와의 인연은 끝내 허락되지 않는 듯했다. 그런 그에게 반전의 계기가 찾아왔다. 2012 런던 올림픽이다.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4개 축구협회로 나눠져 있다. 이로 인해 국가 단위로만 출전 가능한 올림픽에는 1960년 로마 올림픽부터 불참했다. 그런데 64년 만에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니 남자 축구도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결국 영국은 이번 대회에 52년만의 ‘영국 단일팀(TEAM GB)’을 출전시키기로 결정했다. 목표는 단 하나, 1912년 스톡홀롬 올림픽 이후 정확히 100년만의 축구 금메달이다. 축구 종주국의 자부심도 걸려있다.


이와 함께 영국 단일팀은 긱스를 와일드카드로 선발하고 주장의 중책까지 맡겼다. 당초 유력했던 데이비드 베컴(LA갤럭시)마저 제외됐다는 점에서 그를 향한 대단한 기대를 읽을 수 있다. 웨일스를 위해서만 뛰어왔던 긱스도 단일팀의 명분을 받아들여 ‘영국 유니폼’을 입게 됐다. 마흔 살에 찾아온 첫 국가대항전 기회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주변에서도 응원을 보낸다.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위대한 무대에서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게 될 것"라며 긱스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웨일즈 국민들도 긱스의 선택에 응원을 보낸다. 비록 잉글랜드와 극렬한 정치적 대립 관계에 있지만, 자신들의 영웅에게 적어도 한 번 쯤은 세계무대를 호령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긱스는 “(올림픽 출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놀랍고도 기쁘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새로운 도전이다. 웨일스가 아니면 뛰지 않겠다는 내 신념을 꺾을 정도로 큰 유혹이었다. 좋은 성과를 내고 싶다”라고 국가대항전 데뷔의 소감을 밝혔다.


그는 “조국에서의 내 선수 경력은 클럽과 정 반대였다. 베컴, 폴 스콜스, 게리 네빌, 니키 버트 등 맨유 동료들과 함께 자라면서 그들이 월드컵이나 유로에 나갈 때면 항상 부러웠다. 불행히도 내겐 기회가 없었다”라며 “지금 매 순간순간이 특별하다.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생활은 두 눈을 뜨게 해주는 동시에 즐거운 시간”이라고 말했다.


금메달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웨일즈 대표팀으로선 늘 좌절만 겪었다. 그러나 해낼 수 있다는 믿음만 있으면 미래엔 반드시 이뤄진다. 맨유에서도 1991-1992 시즌 리즈 유나이티드에 밀려 우승을 놓쳤지만, 이후 수많은 기회를 잡았고 트로피를 들어올렸다”라며 영국 단일팀에서 마침내 ‘해피엔딩’을 이룰 것이라 자신했다. 더불어 이번을 계기로 “영국 단일팀이 계속해서 올림픽에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영국 단일팀은 세네갈,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우루과이와 조별 리그 A조에 속해 있다. 경우에 따라선 B조의 한국과 준결승 진출을 놓고 8강에서 맞붙을 수도 있다.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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