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정부청사 식당가 골머리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과천 정부청사 인근 식당에는 '마이너스 장부'가 있다. 공무원들이 달아 놓은 외상값이다. 기획재정부ㆍ지식경제부 등 부처별로 장부는 따로 있다. 장부에는 각 과별로 나뉘어 외상 사인이 빼곡하다.
장부당 '몸값'은 억대에 이른다. 과천 공무원들이 외상으로 먹은 음식 값이 수억원대에 달한다는 얘기다. 장부의 '나이'는 한두살도 아니다. 어떤 장부는 누적된 지 벌써 10여년에 이르러 전체 외상값을 더하면 많게는 10억대에 이를 수도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과천 시내 A식당 주인은 "외상을 받은 지 오래됐다"면서 "그 사이 부처가 없어지기도 했고 조금이라도 받아볼 생각에 전화를 걸면 십중팔구 담당자는 없다"고 토로했다.
요즘 과천 공무원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이 장부다. 올 연말 짐을 싸 세종시로 내려가는 부처 공무원일수록 심리적 부담은 더 크다. 쌓이는 외상값에 속을 태우면서도 '공무원이 설마 돈 떼먹겠나'라며 묵언 수행을 하다시피 한 음식점 사장들이 정산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면서다.
B부처 C과에서 총무 역할을 하는 한 공무원은 "과에서 10여명 식사를 하러 가면 보통 내 이름을 적는데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며 하소연했다.
보통 과천 공무원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승합차를 타고 인근 식당으로 이동해 밥을 해결한다. 상권 활성화를 위해 한 달에 두 번(둘째ㆍ넷째 금요일)은 아예 구내식당 문을 닫는다.
한 부처에서 외상이 가능해 찾는 식당은 너댓 군데. D식당에서 빚 독촉을 하면 외상값을 갚지 않은 채 E식당으로 거래처를 옮기는 등 '식당 돌려막기'를 하면서 외상금액을 키워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요즘은 줄고 있다. '공무원 외상이 지나치다'는 인식과 함께 세종시 이전, 정권 말 부처 조직 개편 등 이슈가 맞물리면서 식당에서 외상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부처 차관은 "도대체 전체 외상값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생각 보다는 적은 금액이었다는데, 이는 과천 음식점의 외상 거부와 야근 인력 감소 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일부 음식점은 세종시로 따라 갈 생각도 하고 있다. F식당 주인은 "청사 인근에서 장사를 하면서 단골 손님이 많이 늘었는데 세종시에 분점을 낼까도 생각 중"이라며 "외상값 받으러 따라가겠다는 식당도 있더라"고 전했다.
김혜원 기자 kim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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