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선발 투수진도 괜찮고 타선도 좋은데...”
김시진 감독이 관리하는 나무, 넥센 히어로즈는 올 시즌 튼튼해졌다.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열매를 기대할 정도다. 전망은 비교적 밝다. 질 좋은 토양 위를 따스한 햇볕이 감싼다. 한층 탄탄해진 타선과 선발투수진이다. 특히 타선은 팀 타율이 리그 7위(0.257)에 그치지만 전체 두 번째로 많은 273득점을 올렸다. 홈런은 55개로 선두다. 선발투수진도 달라졌다. 원투펀치 역할을 해내는 브랜드 나이트(6승1패)와 벤 헤켄(5승1패)은 11승을 합작했다. 만년 유망주에 그치는 듯 보였던 김영민도 3승(2패)을 따내며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나무는 심각한 가뭄에 시달린다. 자칫 토양을 갈라놓을 정도다. 바로 불펜이다. 지난 시즌만 해도 김 감독은 비 걱정이 덜 했다. 오히려 흐린 날씨를 우려했다. 지난 시즌 넥센 선발투수진의 평균자책점 순위는 꼴찌(4.97). 반면 불펜은 3.62로 3위였다. 올 시즌 근심의 위치는 뒤바뀌었다. 리그 공동 2위를 달리는 전체 성적(29승2무26패)만 놓고 보면 이는 기우(杞憂)에 불과해 보인다. 하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당장이라도 기우제(祈雨祭)를 지내야할 판국이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마무리 손승락의 부진이다. 구원 부문 3위(14세이브)를 달리지만 19일까지 100명의 타자를 상대하며 안타 27개와 볼넷 7개를 내줬다. 블론 세이브도 5개나 된다. 사실 그간 중책 소화를 고려하면 성적은 선전에 더 가깝다. 리그 전체에서 2010년부터 3년 연속 10세이브 이상을 따낸 건 손승락이 유일하다. 지난 시즌 4승2패 17세이브 2홀드로 팀이 거둔 51승 가운데 절반 가까이를 책임졌다. 구단 관계자는 “올 시즌 어깨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단 한 번 불평 없이 마운드에 오른다”라며 고마워했다. 최근 구위는 조금씩 위력을 되찾고 있다. 지난 5경기에서 9일 한화전 1이닝 2실점 부진을 제외하면 1승 2세이브로 단비와 같은 활약을 해냈다. 문제는 타선과 선발투수진의 동반 선전으로 등판 간격이 잦아졌다는데 있다. 지난 시즌 손승락은 49경기에 출전했다. 올 시즌 더그아웃의 호출은 더 잦아졌다. 19일까지 치른 57경기 가운데 25경기에 등판했다. 자신의 한 시즌 최다인 2010년의 53경기를 훌쩍 뛰어넘을 기세다. 김 감독은 시즌 초 손승락의 과부하 우려에 “선발투수들이 최대한 이닝을 길게 끌고 가준다면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중간계투진의 투입 시기를 늦춰 부담을 덜어줄 심산이었던 셈. 그러나 계획은 보기 좋게 무산됐다. 든든한 허리 찾기 숙제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고 이는 곧 손승락의 출격을 부추겼다. 거듭된 박빙 승부도 빼놓을 수 없다. 넥센이 6월 치른 14경기 가운데 점수 차가 3점이하였던 건 무려 10차례나 된다. 그간 소화한 57경기를 살펴봐도 흐름은 비슷하다. 57경기 가운데 39번을 아슬아슬하게 이기거나 아깝게 내줬다. 여기에는 2무도 포함된다.
살얼음판 승부에서 중간계투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다. 넥센은 순위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있다. 어떻게든 불펜이 돌아가며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붙박이로 자리를 잡은 선수가 없다는 데 있다. 넥센 불펜을 책임지는 이정훈, 김상수, 박성훈, 이보근, 한현희 등은 올 시즌 모두 강진 땅을 밟았다. 1군을 끝까지 지킨 건 손승락, 오재영 정도에 불과하다. 전력 이탈의 근원은 대부분 부진이다. 김 감독은 시즌 초 전력의 키포인트로 김상수와 박성훈을 손꼽았다. 둘은 모두 4월 한 달 동안 선전했다. 김상수는 7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12를 기록했고 박성훈은 8경기에서 1.23을 남겼다. 하지만 상승세는 5월 들어 한풀 꺾였다. 김상수는 9경기에서 평균자책점 8.25로 부진했고 박성훈 역시 3.55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이 같은 페이스는 이정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4월 나선 4경기에서 안타 1개만을 허용했지만 5월 치른 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6.35를 남기며 무너졌다. 이들의 공백은 오재영과 이보근이 메웠다. 특히 4월 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0.80으로 부진했던 이보근은 5월 출전한 8경기에서 12,2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4.26을 기록, 3승(1패)을 따냈다. 오재영도 9경기에서 11.2이닝(평균자책점 3.86)을 맡으며 김 감독의 걱정을 덜어줬다. 하지만 잦은 등판 탓일까. 이들의 기세 또한 6월 들어 한풀 꺾이고 말았다. 오재영이 6경기에서 남긴 평균자책점은 무려 9.95. 이보근은 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6.23을 기록, 지난 15일 2군행을 통보받았다. 다시 불거진 김 감독의 고민은 또 한 번의 돌려막기로 최소화되고 있다. 강진에서 돌아온 김상수는 6월 나선 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60으로 비교적 호투했다. 이정훈도 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2.35를 남기며 2승 1홀드를 챙겼다. 가장 고무적인 건 신인 한현희의 맹활약이다. 4월과 5월 평균자책점은 각각 6.75와 11.25에 그쳤지만 6월 출전한 6경기에서 11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지난 17일 목동 롯데전에서는 3이닝 무실점 역투로 데뷔 첫 승을 거두기도 했다. 구단 관계자는 “한현희의 선전으로 불펜에 숨통이 트였다”며 “15일 1군에 등록된 신인 박종윤까지 제 몫을 해낸다면 김 감독의 작전 구상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나기만으로 포스트시즌 이상의 열매를 기대하긴 어렵다. 돌려막기 특유 한계에 부딪히기 쉬운 까닭이다. 불펜의 중심을 잡아줄 버팀목은 그래서 절실하다. 이 점에서 넥센은 지난 시즌까지 큰 걱정이 없었다. 2009년(58경기, 75.2이닝)과 2010년(65경기, 77이닝) 송신영(한화)이 있었고 2010년(52경기, 75이닝)과 지난 시즌(56경기, 87.2이닝) 이보근이 있었다. 특히 이보근은 손영민(KIA)과 함께 지난 시즌 불펜투수 가운데 정우람(SK, 94.1이닝)에 이어 두 번째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올 시즌 컨디션은 그다지 좋지 않다. 아직 시즌이 한창이지만 주전으로 자리매김한 2009년 뒤로 평균자책점(5.75)이 가장 높다. 그렇다면 김 감독이 생각하는 향후 불펜의 대들보는 누구일까. 그는 딱히 한 명을 지목하지 않았다. 1, 2군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투수들의 이름을 모두 나열했다. 목록에는 선발투수로 출전하고 있는 김병현도 포함됐다. 여기에는 따로 전제가 붙었다.
“불펜에서 뛸 수 있을 만큼 체력을 끌어올린다면 리드하는 경기에서 손승락 앞에 배치해 1이닝 정도를 맡기고 싶다.”
가능성은 결코 미미하지 않다. 김병현은 지난 14일 목동 KIA전에 선발투수로 출전, 5이닝 7피안타 5실점으로 부진했다. 패전(6-9)을 떠안은 그는 경기 뒤 “좋은 컨디션이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아쉽다”며 “투구 이후 팔에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근육이 뭉친 곳도 없다. 앞으로는 정상적인 로테이션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병현은 메이저리그에서 86세이브를 올리며 수준급 불펜투수로 이름을 알렸다. 넥센이 애타게 찾는 단비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을 수 있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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