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의 두 기업 회장 이야기다. 서울대 동문이지만 개인적인 인연은 변변치 않다. 삶의 궤적도 다르다. 한 사람은 30년 넘게 철강 기업에 몸담고 있고, 또 다른 이는 공무원 출신으로 장관직을 거쳐 통신 기업을 이끈다. 그런 두 사람이 대선(대통령 선거)의 해 정치적 외풍에 휘말렸다.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살얼음판 행보가 묘하게 겹친다. 바로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이석채 KT 회장이다.
날벼락은 이미 한차례 정 회장을 강타했다. 2009년 정 회장의 포스코 최고경영자(CEO) 선임 과정에서 청와대 인사가 개입했다는 설이 퍼지면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호사가들은 소문의 진의보다 배경에 주목했다. '정 회장을 제거하려는 정치적인 음모'라는 것이다.
이 회장도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올 초 연임에 성공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고비를 넘기자마자 또 다시 정 회장 사태에 전전긍긍했다. KT 고위 임원은 "(정 회장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 회장에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토로했다. 같은 배를 탄 두 회장의 딱한 처지에 대한 항변인 셈이다.
포스코와 KT는 '공민기업(공기업에서 민영화한 기업)'이다. 포스코는 2000년, KT는 2002년 공기업의 탈을 벗었다. 그 과정에서 국민주 매각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일반 기업과 달리 대주주가 없는 이유다. KT는 국민연금공단 6.64%, NTT도코모 5.46%, 실체스터 인터내셔널 인베스터 5.01%, 나머지는 개인 주주다. 포스코는 뉴욕멜론은행 15.19%, 국민연금공단 6.81%를 제외한 대다수가 개인 주주다.
소액주주가 많다는 것이 얼핏 '이상적'으로 비칠 수 있다. '오너 리스크'를 우려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책임'을 져야 할 주인이 없다보니 '보이지 않는 손'이 두 회사를 들쑤신다. 그 손이 정부(또는 정치권)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돌이켜보면 포스코와 KT 경영진 대부분은 외풍에 상처를 입고 중도하차했다. 포스코는 박태준, 김만제, 유상부 회장을 비롯해 5명의 회장이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KT는 남중수 사장이 임기 중 물러났다. 일부는 개인 비리 때문에 낙마했지만 대부분은 정치 놀음의 희생양이었다. 그때마다 정부의 간섭을 꾸짖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번번이 용두사미로 끝났다.
경영자가 외풍에 시달리면 기업 경쟁력은 쇠퇴한다. 포스코와 KT 주가는 민영기업의 부조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포스코는 2010년 1월 정점(63만원대)을 찍은 후 추락해 반 토막(36만원대)이 났다. KT도 목표주가가 5만3000원이지만 2만원대에 머물러 있다.
이 회장과 정 회장은 올 2월 연임에 성공했다. 3년 임기이니 2014년까지 대표직이 보장되지만 구속력이 없는 선언적 문구에 불과하다. 급기야 '연말 교체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2001년)인 마이클 스펜스 미국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는 "불확실성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KT와 포스코의 불확실성은 내수 시장 정체도, 미래의 성장 해법도 아니다. 바로 책임 경영의 부재다.
경영자가 임기 내 책임 경영을 실천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기업의 성장을 논하는 것은 오히려 사치다. 이쯤 되면 "대표 임기를 5년 단임제로 바꿔 정부 출범과 퇴임을 같이하는 게 낫다"는 하소연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포스코와 KT를 살리는 길이라면 대표 임기를 손질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공기업의 민영화는 책임 경영의 혁신 없이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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