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계속 한국을 골탕 먹이고 있다. 이명박(MB) 정부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외환은행 주식 값을 '잘 쳐주어' 팔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론스타는 지난달 22일 주벨기에 한국대사관에 투자자-국가소송(ISD) 중재 협의를 요청했다. ISD는 차별적이고 불투명한 정부정책으로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외국 투자자가 제3의 국제중재 절차를 이용하는 제도다. 중재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제소한다. 그동안 한국이 여러 나라와 맺은 양자 간 투자보장협정(BIT)과 자유무역협정(FTA)에 ISD 조항이 들어 있다.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이다. MB 정부가 ISD의 독소적 요소를 무시한 채 FTA를 발효시켰는데 이젠 론스타가 ISD의 독소적 폐해를 일깨워주고 있다. 정부는 론스타더러 괘씸하고 뻔뻔하다며 비난하겠지만 이거야말로 어수룩한 행동이다. 투기자본의 가치판단 기준은 뭐니 뭐니 해도 '돈'이다.
론스타는 수중에 여러 꽃놀이패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주식을 팔아치웠고 돈을 거머쥐었으니 거리낄 게 없다. 납부한 세금 3915억원을 돌려줌과 동시에 한국 정부의 매각 결정이 늦어져 주가가 높을 때 팔지 못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이다. 외환은행 주가가 가장 높았을 때가 1만6000원대, 실제 매도가액은 1만3000원대였으니 3억3000만주를 곱해 약 1조원의 손해를 보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한국과 벨기에 간 투자보호협정의 ISD 조항이다. 중재 협의를 요청한 론스타 벨기에법인의 실제 주주는 미국 론스타이다. 따라서 미국 론스타도 간접 피해를 입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논란은 있지만, 한ㆍ미 FTA의 ISD 조항을 적용할 수 있다.
론스타 입장에선 밑져 봐야 본전이다. 설령 패소해도 론스타 경영진으로선 주주에게 할 말이 있다. 반면 상대방인 한국 정부로선 이번 싸움에서 질 경우 수천억 원을 물어줘야 할지도 모른다. 이미 싸움은 붙었다. 그 바닥에서 돈 냄새를 잘 맡는 국제 로펌들이 론스타에 모여들었고, 한국 정부는 공무원 몇 명이 이에 대응한다고 한다.
론스타는 MB 정부의 수를 읽고 있다. 론스타의 중재 요구는 결국 한ㆍ미 FTA 비준을 강행한 세력에 불리할 것이다. 특히 론스타가 6개월의 냉각 기간을 거쳐 ICSID에 중재를 신청할 시점인 11월은 한국 대통령선거가 한창 불붙을 때다. 그러니 지금 세금을 돌려주는 것을 고려해 보라는 암시일 수도 있다. 참으로 영악스럽고 투기 자본가다운 생각이다.
MB 정부는 론스타가 ISD를 이용해 중재 시도를 할 것을 예측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과연 무엇 때문에 론스타에 그리 쩔쩔맸는가. 왜 징벌적 처벌을 하지 않았는가. 론스타는 주가 조작을 시도한 중범죄인이다. 이에 합당한 처벌을 해야 했음에도 국제 규범을 들먹이면서 풀어준 MB 정부에 'ISD 1호 사건'의 1차적 책임이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반대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 반영해야 한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일치고 그 뒤가 깨끗한 것을 보지 못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ISD 조항을 개정해 론스타와 같은 투기자본에 대해서는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당한 주권이 훼손되거나 방해 받지 않도록 그 적용 범위를 최소화하여야 한다. 만일 개정 요구를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을 경우 예외적으로 국내법이 FTA보다 우선 적용되는 특례조항(Treaty override)을 만들어서 국내법 우선 적용 원칙을 세워야 한다. 이게 영악한 론스타가 어수룩한 정부에 한 수 가르쳐 준 기막힌 수업의 결론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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