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기자가 보유하고 있는 자동차는 국산 소형 승용차다. 구매비용을 아끼겠다고 이런저런 편의사양을 모두 뺀 말 그대로 '깡통차'다. 심지어 변속기도 요즘 대세인 '오토매틱'이 아닌 '수동(매뉴얼)'이고 전좌석의 도어를 잠글 때도 일일이 손으로 잠금버튼을 눌러줘야 한다. 이 버튼 때문에 '80년대 차냐'는 농담섞인 질문을 받기가 다반사다. 사양만 놓고 보면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처진다. 그렇다고 정말 20년 이상된 낡은 차로 오인할 수도 있겠다. 2004년식이니까 올해로 구매한지 8년째다.
자동차분야를 맡은 지 2년째. 요즘 공개되는 신차를 보면 내 차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야말로 '눈 돌아갈 일' 투성이다. 매끈한 디자인은 물론이고 엔진 성능, 다양한 편의장치까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따라잡기도 힘들 정도다.
비교할 차급은 아니지만 이달 초 출시한 기아차 K9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첨단사양의 종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드업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차량 통합제어 시스템'은 물론이고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앞좌석 프리 세이프 시트벨트, 급제동 경보 시스템, 경사로 밀림 방지장치,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 타이어 공기압 경보 시스템, 오토 디포그 시스템, 자외선 차단 전면 유리, 자동 요금징수 시스템 등의 첨단기능이 탑재돼 있다.
기자의 차량과 동급인 프라이드만 봐도 많이 달라졌다. 지난해 선보인 모델의 경우 6에어백은 기본이다. 차체자세제어장치, 속도감응형 전동식파워스티어링, 차세대 VDC, 타이어 공기압 경보장치, 경사로밀림방지장치, 급제동경보시스템 등 과거 소형차에서는 상상도 못할 여러 사양이 고객들을 유혹한다. 열선 스티어링휠과 크루즈 컨트롤은 첨단 사양 축에도 끼지도 못한다.
기자가 자동차분야를 맡은지는 이달로 1년 10개월째이다. 만 2년이 다 돼가는 셈이다. 이 시점에서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앞서 언급한 차종의 각종 옵션 중 제대로 느낀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바꿔 말하면 각종 첨단 사양 중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게 별반 없다는 의미다. 내 차에 없는 신기술을 접하면 신기하고 편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뿐이다. 물론 오랜 기간 경험할수록 사양의 가치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옵션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또 다시 불거지고 있는 자동차 가격 논란 때문이다. 각종 첨단 사양에 현혹돼 견적을 뽑아보니 당초 언급된 차값보다 1000만원이나 비싸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누군가는 '속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분명 문제다. 원자재 가격도 물론 차값에 포함되지만 불필요한 옵션이 가격을 올린다는 지적은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다.
자동차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옵션에 가려 차의 가치가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본 보다는 치장에 무게를 두는 현상을 꼬집은 말이다. 첨단사양이 더욱 늘어나는 상황을 감안하면 자동차업체의 고민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나저나 요즘 들어 새 차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내 차에 없는 사양이 유혹한다고나 할까. '참느냐, 교체냐'의 기로에 서있다.
최일권 기자 igchoi@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