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글쎄요? 아직 시간이 남은 상황이라 회장단 참석자 리스트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확인할 수 없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0일 회장단회의를 앞두고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입조심에 들어갔다. 참석 대상자와 회의 장소는 물론 회의 주제까지 '아직은 밝힐 때가 아니다'며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경련이 회장단 회의 이틀전까지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이번 회의의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전경련 회장단 회의는 격월로 홀수달인 1ㆍ3ㆍ5ㆍ9ㆍ11월 둘째주 목요일에 열린다. 이번 회장단 이후에도 올해 9ㆍ11월 두 번 더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하지만 하반기부터 대통령 선거 국면이 본격화될 것이란 점에서 이번 회장단회의는 사실상 대선 전 재계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강도높은 대기업 개혁안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중요한 때 회장단 회의가 열리지만 재계 입장을 대변할 인물이 없다는 데 있다. 유력 오너들의 참석이 불투명해지면서 회의 자체가 주목받기 힘든 상황이 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현재 유럽출장 중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도 개인 일정을 이유로 참석이 쉽지 않다.
이같은 때 유력 총수들의 회의 참석만 독려하는 것은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니다. 가뜩이나 경영 활동에 바쁜 오너들이 대선 등 정치적 이슈가 민감한 시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전경련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
회장단 회의 주제를 사전에 공개해 이슈화하는 것은 물론 회원사들이 현재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경영환경이 어떤지 수요 조사한 후 이번 대선에서 필요한 경제 정책을 제안할 필요도 있다. 회장단 회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그 자체가 전경련의 혁신인 셈이다.
1961년 8월 탄생한 전경련은 반세기 동안 한국 재벌의 구심적 역할을 했다. 500여개 국내 굴지의 기업을 대표하는 전경련 회장단의 순서는 재벌의 순위였다. 회장단 가입조건도 까다로웠다. 기업의 규모나 연한은 물론 기존 회장단의 찬성도 있어야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경제 개발시대 정부와 기업을 잇는 창구 역할을 했다는 탄생적 배경 때문에 최근 정치권은 전경련을 정경유착의 통로라고 비판하고 있다. 전경련이 이같은 비판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회장단회의부터 달라져야 한다. '쉬쉬하는 그들만의 회의'를 '정책제안 회의'로 바꾸는 것 자체가 전경련 해체론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은정 기자 myb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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