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판공비’는 중앙정부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공직기관의 장들이 조직을 운영하고 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 공무를 처리할 때 사용하는 비용을 지칭합니다. 1993년 이후부터 명칭이 ‘업무추진비’로 변경됐습니다.
업무추진비는 기관의 장이 직접 지출하기 때문에 내용의 투명성에 대한 문제점이 끊임없이 제기되곤 하죠. 실제로 공무에 쓰라는 업무추진비를 개인의 용도로 사용한 사실이 적발되곤 합니다.
따라서 지난 2003년 6월 국무총리실은 ‘행정정보공개 확대를 위한 국무총리 훈령(안)’을 공포하고 중앙부처 등 행정기관이 추진하는 주요 국책사업과 업무 추진비 등에 대한 행정정보 공개를 의무화하고 각 행정기관은 정보공개 청구가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각종 정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도 인터넷 홈페이지에 역대 위원장의 업무추진비 지출 내역을 월간으로 정리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장관급인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직책의 특성상 많은 이해관계자들과 만나고 정책 설명회 등 행사도 많이 개최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추진비 지출 규모도 높은 편입니다.
그렇다면 지난해 1월 취임한 김석동 위원장은 업무추진비를 얼마나 썼을까요? 내역이 공개된 올 3월까지 15개월 동안 그가 지출한 금액은 총 345건 2억1584만원으로 집계됐습니다. 매월 평균 23.0건, 1438만9000원을 사용했으며, 지출 건당 평균 지급액은 62만6000원이었습니다.
초대 수장을 지낸 전광우 전 위원장은 부임 11개월 동안 249건, 1억1950만원을 사용했습니다. 월 평균 지급건수는 22.6건, 지급액은 1086만4000원, 지출 건당 평균 지급액은 48만원이었습니다. 뒤를 이은 진동수 전 위원장은 23개월 동안 위원회를 이끌며 총 476건, 2억1931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지출했습니다. 월평균 지급건수는 20.7건, 지급액은 953만5000원이었으며, 건당 평균 46만1000원을 사용했습니다.
단순히 수치상으로만 놓고 보면 김 위원장의 씀씀이가 컸다고 오해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업무추진비를 방만하게 썼다는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김 위원장의 지난 재임기간을 살펴보면 이해가 갑니다. 취임 직후 김 위원장이 매월 소화하는 일정은 전임 위원장에 비해 배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저축은행 사태를 막아야했고, 가계부채 연착륙, 외화건전성 강화 등 시장 안정을 위한 대책을 마련한데 이어 외환은행 매각에 이어 우리금융지주 매각을 추진키로 했으며, 자본시장 개혁을 위한 자본시장통합법 개정,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투명화하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제정 등 관련 법안 문제 해결을 위해 수많은 이해관계자들과 만났고, 만나고 있고, 만날 것입니다.
활동내역과 폭이 넓어지면서 자연스레 따라오는 게 바로 비용 지출 문제이지요. 이에 관한 김 위원장의 생각은 아주 간단하다고 합니다. “힘들어도 몸으로 때우면 혈세를 아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불편을 감내하고 발품을 많이 팔면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김 위원장은 서민금융 1박2일 행사 때에는 비좁은 버스를 타고 다니며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이틀간 1500km에 달하는 거리를 돌며 간담회를 수차례 주제한다는 것은 젊은 사람들도 감내하기 쉽지 않은 일정입니다. 이 일정을 짤 때도 가장 먼저 고려됐던 사안이 비용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버스보다 더 예산을 아낄 수 있는 교통수단이 있다면 반드시 이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워낙 돈을 안 써서 힘이 더 든다며 직원들이 애교스런 불만을 하기도 합니다만, 말 그대로 애교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작은 부분이지만 이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다 보니 그만큼 금융위 전체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부임하는 기간 동안 “돈 한번 편하게 써봤다”는 금융위 공무원들의 자랑은 들어보지 못할 게 분명해 보입니다.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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