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 방송인 백지연,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청춘을 이야기하다
[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지난 3월 23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김용(53) 미국 다트머스대 전 총장을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했다. 세계 언론은 '깜짝카드'라는 반응을 보였다. 전임 총재들과 달리 김 총장은 금융이나 경제분야 보다는 빈곤국 질병퇴치 등 의료활동이 경력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경제 비전문가를 세계은행 총재로 삼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뒤따랐다. 그러나 김 전 총장은 지난달 16일 제12대 세계은행 총재로 무난히 선출됐고, 오는 7월 1일부터 5년간의 임기를 시작한다.
신임 김 총재는 한국계 미국인이자 세계은행 최초의 아시아계 총재다. 한국 사회가 그에게 보내는 지지와 기대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크다. 이제 그는 개발도상국과 빈곤 국가가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할 수 있도록 금융ㆍ재정지원을 하는 국제적 개발 원조 기구인 세계은행에서 또 다른 영역에 도전하게 된다.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의 저자 백지연은 김 총재의 한 마디를 빌려와 책을 시작한다. "나는 무엇이 되는 것(what to be)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느냐(What to do)를 늘 생각했죠." 동시에 책 제목이 된 이 말은 김 총재의 '도전'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원동력을 설명한다.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는 방송인 백지연의 눈을 빌려 김 총재의 삶을 풀어냈다. 백지연은 "(한국이 그를 제대로 알지 못하던)2009년부터 이미 김용을 주목했다"고 말한다. 백지연은 자신이 케이블 채널 TVn에서 진행중인 '피플 인사이드'를 통해 2009년과 2011년 김용을 인터뷰했고, 세계은행 총재로 선출된 직후 뉴욕으로 날아가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총재가 선출된 이후 진행한 인터뷰는 영국 BBC와 미국 CNN, 그리고 '피플 인사이드' 등 세건이 전부다. "국내 언론 중 '피플 인사이드'만이 (총재 지명 직후) 김용 지명자에 대해 다양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고 할 만큼 그는 자신만만했다.
이 책의 장점은 김 총재의 성장 과정과 커리어를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출생부터 성공까지를 일직선으로 나열하는 단선적 진행보다, 김 총재를 다각도로 돌려가며 보여주고 사람들이 그에 대해 품을 만한 의문을 해결해 준다. 다양한 인터뷰와 기고에서 가져 온 김 총재의 발언도 섞여 더 쉽고 빠르게 이해된다.
지극히 '한국적' 가치관 아래에서 성장한 김 총재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특히 흥미롭다. 김 총재는 다섯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 아이오와주 머스카틴으로 이민 간 이민 1.5세다. 브라운대에 입학해 첫 학기를 보낸 직후 정치학이나 철학 공부를 해 보고 싶다는 김 총재에게 그의 아버지 김낙희씨는 이렇게 퍼부었다. "야 임마, 인턴십(의과)이나 다 끝내고 나서 아무거나 한다고 얘기해!" 계급상승과 성공이 절대적 가치로 간주되는 한국사회에선 너무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러나 김 총재는 아버지의 훈육을 '실제적인 문제를 배울 수 있었던 기회'로 받아들인다. 먼저 의사가 되었기에 사람들이 겪는 실제 고통에 대해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후 하버드대에서 의학 박사 학위와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계속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김 총재의 성공담은 단순히 '개천에서 용 났다' 식으로 치부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그보다는 사회 엘리트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 답안을 제시해준다.
그 역시 "이 세계를 위한 나의 책임은 뭘까, 뭘 해야 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해왔다"고 말한다. 20여년의 세월동안 저개발국 보건 발전을 위해 일해 왔고, 지금은 세계은행 총재로서의 활동을 시작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세계의 문제를 내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겐 시야를 넓히라고 주문한다.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고 참여하는 방법을 찾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적어도 두 가지 언어를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총재처럼 '세계시민'으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새겨 둘 만한 조언이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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