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과년한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매회 화제만발인 SBS <짝>, 이 프로그램에 누구보다 관심을 둘 법도 하지만 또 그 때문에 유난히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도무지 남의 일 같지 않거든요. 흥미를 위해서이긴 해도 내조의 여왕이 필요한 CEO라느니, 옥스퍼드 출신이니, 자수성가한 부친을 가진 딸이라느니, 속물근성을 자극할만한 상징적인 의미를 하나씩 부여하는 것도 못내 찜찜하고요. 회가 거듭되는 동안 많은 문제점들이 개선되긴 했으나 상대방의 외모며 성격에 대한 노골적인 평가는 여전해서 대놓고 신랄한 지적들이 오갈 때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더라고요. 지극히 사적인 자리일지라도 아무쪼록 자제하는 편이 옳을 사안이거늘 어찌 카메라 앞에서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낼 수가 있는지 원. 이미지를 굳이 포장할 필요도 이유도 없지만, 명쾌하고 솔직한 것도 좋지만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만큼은 아쉬울 수밖에요. 방송 중에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이 좋은 짝을 찾길 간절히 바란다’라는 자막이 보인 적이 있는데요. 순간 되묻고 싶었어요. 타인의 약점이나 흠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는 사람을 내 자식의 짝으로 삼고 싶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고요. 요즘 사석과 공석을 못 가리고 내뱉은 말로 인해 낭패를 보는 이들이 어디 한 둘이던가요. 젊은 호기로, 또는 제작진의 부추김에 의해 평생에 남을 오점을 남기는 일은 부디 없길 바란다는 얘기에요.
재도전하는 출연자들까지 있다니, 대단합니다
지금까지 ‘애정촌’에 초대된 남녀가 300명에 가깝다고 하죠? 그 중에서 남자 일곱 , 여자 다섯이 ‘한 번 더 특집’을 통해 또 한 번 짝을 만들 기회를 갖고자 ‘애정촌’을 찾았습니다. 심지어 세 번째 방문이라는 분들도 있었는데요. 한참 옛날 사람인 제 입장에서는 그게 참 신기했어요. 아무래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여러 날에 걸쳐 촬영한 분량을 단 몇 시간으로 줄여 내보내자니 편집에 의해 자신의 행동이며 발언들이 왜곡된 경우가 허다했을 것 같아서 말이에요. 우리나라 말이라는 게 토씨 하나만으로도 영판 달라지기 마련인지라 앞뒤 뭉텅뭉텅 잘라 붙여 놓으면 완전히 딴 얘기가 되잖아요. 따라서 직접 방송을 보고난 후 출연을 백번 후회했지 싶으련만 오히려 도전의식이 새록새록 샘솟았다니 놀랍지 뭐에요. 이미지 쇄신을 위해, 지난번의 서툴렀던 부분들을 만회하기 위해 재도전에 임한 출연자들의 각오가 대단하더군요.
그런데 흥미로웠던 건 지난 회의 실수를 거울삼아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인 출연자가 있는가하면 똑같은 잘못을 그대로 답습하는 출연자도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고민 해결 프로그램을 보면 대개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하잖아요? 아무리 다수가 벌 떼처럼 달려들어 너 이상하다고 해도 본인이 이상한 걸 모르면 그 잘못은 고쳐질 수가 없는 거거든요. 평생의 짝을 찾는 일도 마찬가지이지 싶어요. 내 문제가 무엇인지 나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이상 출연만 계속한다고 일이 성사가 되는 건 아니겠더라고요.
0표 아가씨에 대한 배려가 아쉽네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항상 아쉬운 건 0표 아가씨에 대한 배려입니다. 평소에도 혼자 밥 먹는 게 쉬운 일은 아닐진대 혼자 도시락을 먹으리라 예상하고 그 자리에 온 출연자가 어디 있겠어요. 그런 잔인한 구석들이 인기 비결 중 하나겠지만 우리 아이가 거기 나가서 같은 일들을 겪었다고 상상이라도 해보면, 그저 아찔하기만 합니다. 이번에 두 번씩이나 혼자 도시락을 먹은 ‘여자 5호’가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그 사실을 전하는 걸 보고 있자니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았어요. 하소연을 들은 어머니께서는 인연이 따로 있겠지 하며 쿨하게 넘기셨죠. 그러나 짐작컨대 방송을 보시고 난 후에까지 그러시지는 못하셨지 싶어요. 몇 차례의 데이트 장면 말고도 숙소에서조차 ‘여자 5호’는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거든요. 편집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이 상한 ‘여자 5호’가 카메라를 거부했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인터뷰하는 장면 외에는 볼 수 없는 그녀로 인해 제 마음은 내내 불편했습니다.
‘남자 3호’가 위로하는 장면이 한번 있긴 했지만 그전에 이미 ‘남자 3호’는 남자들끼리 얘기를 나눌 때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다, 지금은 각자 짝 찾기가 더 급하다’는 식으로 넘겨버린 적이 있지 않나요? 감기몸살에 걸려 아픈 사람들에게는 서로 약이며 음식을 가져다주는 등 살뜰히 보살폈으면서 정작 마음의 상처는 나 몰라라 했다는 점, 특히 다수가 약자 한 사람을 외면했다는 점 때문에 저는 남자 출연자들은 물론 제작진에게도 그다지 좋은 마음이 들지 않네요. 앞으로 출연할 분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건 내 모든 언행이 녹화가 되고 있다는 사실, 어떻게 편집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겠고요. 제작진이 늘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은 언제 어느 때나 출연자의 인권보호일 겁니다. 시청률을 얻고자 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앞날에 흠집을 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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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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