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대입을 준비 중입니다. 역사교육을 전공할거에요. 고려시대 유물은 대부분 북한에 있는 것 아시지요? 공부하는 데 더 유리할것 같아요."(박성희·20·가명)
"저는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수학이 어려워요. 영어도 더 잘하고 싶은데… 북한에선 영국식 영어를 가르치지만, 회화를 많이 배우지 못했거든요."(이춘화·19·가명)
지난 14일 오후. 똘망똘망한 눈망울의 두 여학생이 정부 부처 최고참 차관 앞에서 당차게 소망을 얘기했다. 단정한 옷차림, 발랄한 말투에선 이들이 사선(死線)을 넘어 탈북한 청소년들이라는 걸 눈치채기 어려웠다.
이날 신제윤 기획재정부 1차관이 찾은 송파구 가락동의 '하늘꿈학교'는 15세부터 26세 사이 탈북 청소년 60명이 숙식을 함께 하는 대안학교다. 2003년 3월 문을 연 이 곳은 '엘리트 탈북 청소년'의 산실이다. 개교 첫 해 서울대와 연세대 등 명문대에 외국인 특례로 입학한 학생들이 상당했고, 충남지역 대입 검정고시 수석도 이 학교에서 나왔다. 재학생과 졸업생 사이의 유대도 끈끈해 매년 '홈커밍 데이'엔 100여명의 졸업생들이 찾아온다.
교과 과정은 정규 교육기관도 부러워할 만한 수준이다. 임향자 교장은 "통일 뒤 남북을 통합할 리더를 키워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북한은 경제사정이 나빠지면서 공교육이 거의 무너져 있지만, 입학 뒤 높은 학업 성취도와 외국어 구사 능력을 자랑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임 교장은 그러면서 "재정의 70%를 개인과 기업의 후원에 기대고 있어 더 많은 아이들이 혜택을 받으려면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이날도 스터디룸에선 두 학생이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온 자원봉사 선생님에게 '회화 특훈'을 받고 있었다. 복도 건너 중등반에선 '변증법의 명제가 잘못됐을 경우'를 두고 선생님과 학생들의 논리전이 한창이었다.
국사를 가르치며 학교 홍보팀장을 겸하는 강윤희 선생님(30)도 "시행착오를 거치며 아이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커리큘럼을 만들었고, 배움의 열기도 대단하다"며 "입소문이 나 학교의 정체성을 잘 모르는 인근 지역 학부모들이 입학을 문의해 오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입학을 원하는 학생은 북한 이탈주민이 남한에 와 처음 머무는 하나원에 공고를 내 선발하지만, 입학 전 프리스쿨(preschool )과 깐깐한 면접을 거쳐야 한 식구가 될 수 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열의가 뜨거워 월 100만원 남짓 박봉에도 신바람이 나 가르친다"며 활짝 웃었다.
현장을 찾은 신 차관도 "우리 부모님 역시 황해도 개풍군에서 내려와 갖은 고생 끝에 남한에 터를 잡고, 아들을 차관으로 키우지 않았느냐"며 "통일이 되면 남북을 두루 이해하고 글로벌 경쟁력까지 갖춘 이 학교 학생들이 크게 쓰일 것"이라고 격려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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