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세계 경제의 향방을 놓고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 대학 교수와 지상 논쟁을 펼쳐온 니알 퍼거슨(48ㆍ사진) 하버드 대학 교수가 자신의 주장이 일부 틀렸다고 인정했다. "미국에 생각보다 많은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서 "내 생각이 틀렸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그 동안 두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처방과 관련해 긴축재정을 펼칠 것인지, 재정정책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것인지 치열하게 논쟁해왔다. 두 사람의 논쟁은 국채 문제로도 이어졌다. 크루그먼은 미국 정부가 부채를 감당할 수 있다고 본 반면 퍼거슨은 재정기반이 약해 부채를 감당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번에 자신의 주장을 철회한 퍼거슨은 "'슈퍼파워' 국가라면 '슈퍼빚'을 질 수 있다"면서 "미국은 기축통화 발행국으로 자국이 원하는 것이면 뭐든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고 표현했다. 엄청난 빚이지만 당분간 이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19세기 슈퍼파워 지위를 누렸던 영국의 경우 투자자들이 불안에 떨기 전까지 막대한 부채가 있었지만 인플레이션 걱정이 없었다"면서 "미국은 현 유럽처럼 시장의 신뢰를 잃기 전까지 부채문제로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자신의 생각과 달리 "미국이 훨씬 안전한 피신처가 될 수 있다"면서 "재정부채가 한동안 늘어도 미국은 이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채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막대한 부채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디폴트(채무불이행)다. 퍼거슨은 "디폴트를 제외할 경우 빚을 탕감 받거나 인플레이션으로 날려버리든지 아니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빚을 갚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퍼거슨은 "미국이 부채를 인플레와 경제성장으로 감당할 수 있겠지만 유럽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면서 "유럽의 부채문제가 1년 전보다 심각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유럽 부채위기와 관련해 유럽중앙은행(ECB)에서 돈을 찍어내는 것에 반대한다. 따라서 인플레로 부채를 해결하기는 틀렸고 채무 위기 국가들에 긴축재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경제성장으로 빚을 갚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어떻게든 몇몇 국가는 디폴트로 이어지리라는 게 퍼거슨의 생각이다.
퍼거슨은 크루그먼의 승리를 순순히 인정하지 않았다. 국채 금리와 관련해 크루그먼이 옳았다면 재정정책에 관한 한 자신이 맞았다는 것이다.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든 미국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게 퍼거슨의 주장이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든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든 내년부터 긴축재정에 돌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태생인 퍼거슨은 옥스퍼드ㆍ케임브리지ㆍ더블린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1992년부터 옥스퍼드에서 역사학과 경제사를 강의하다 2004년부터 하버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제사가인 그는 금융과 제국(帝國)에 관한 저술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 한국에서 '돈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다큐멘터리 진행자가 바로 퍼거슨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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