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신도시 20년.. 빛과 그림자② U-시티 판교의 24시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5월, 한밤중에 젊은 아가씨가 탄천변 으슥한 곳에 끌려가 성폭행 당했다. 그녀가 오로지 기억하는건 냉동창고가 갖춰진 소형 화물트럭이라는 점뿐이었다. 그러나 범인은 사건 발생 다섯시간만에 검거됐다."
"7월, 팔십세가 넘은 노부부가 애완견 한마리를 잃어버렸다. 애완견은 5년 이상 함께 살아온 식구나 마찬가지여서 노부부는 크게 낙담한 처지였다. 강아지는 신고된지 네시간만에 집으로부터 2km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돼 주인 품에 안겨졌다"
"8월, 한밤중 엄청난 폭우로 백현동 동사무소 지하층이 잠겼다. 사고가 터지자마자 상황실로부터 신고를 받은 공무원들이 달려와 양수펌프 등을 동원, 복구했다"
"9월, 백현마을 5단지 앞 버스정류장 50m 떨어진 곳에서 노인이 쓰러졌다. 10분 후 경찰관이 달려와 인근 병원으로 호송했다"
◇ '빅브라더의 세상' 판교=지난해 성남시 판교 통합운영센터에서 처리한 업무의 일부다. 통합운영센터에서는 판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모니터 요원 20여명이 교대로 24시간 판교에 들고 나는 차량은 물론 각 마을 곳곳을 살피느라 분주하다. 모니터하는 동안 범죄, 자연재해, 교통정체, 환경오염 등 이상한 징후가 포착되면 경찰 및 해당공무원에 즉각 연락이 취해진다. 마침 도난 신고된 차량 한대가 판교 IC로 들어섰다. 상황실은 이를 포착, 즉시 경찰관에 통보했다. 곧바로 추격전이 펼쳐졌고, 도난차량은 얼마 못 가 현장에서 붙들렸다.
우리에게 신도시라는 건 전면적 토지 수용 및 철거 후 일시에 주택을 대량공급하는 토건도시다. 20여년전 분당이 단순히 아파트를 빼곡히 채워올리는데 급급했다면 지금의 신도시는 각종 지능과 기술이 적용된다. 제2기 신도시 판교에도 토건적 의미외에 '통합운영센터'라는 테크놀로지가 더해졌다. 아직 건설이 진행중인 2기 신도시 모두 'U-시티'가 적용되기는 마찬가지다.
'판교 통합운영센터'는 'U-시티 판교'를 화성 동탄과 더불어 세계에서 유이(維二)한 유비쿼터스도시로 자리매김한 핵심 기능이다. 판교는 지난 2003년 계획 당시부터 정보통신망이 구축돼 원하는 정보를 언제,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다.
"판교 내에는 총 305개의 CCTV가 설치돼 24시간 전역을 감시하고 있다. 사각지대가 단 한군데도 없다. 이곳에서 완전범죄는 꿈도 안 꾸는게 좋다. 안전성, 편리성 등이 유비쿼터스 도시 판교의 특징이다. 동탄에도 'U-시티'가 적용됐지만 판교만큼 정밀하지는 않다. 지능화된 도시라해도 틀리지 않다." 이주옥 성남시 통합관제센터 담당관의 말이다.
◇ 총 15개 서비스, 각종 재난도 대응=여기서 공공 방범 외에 제공되는 서비스는 더 많다.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도 통합센터의 역할은 막중하다. 즉각 담당공무원에 발생지점 및 현황 등을 문자메시지로 통보해 복구반을 투입, 작업을 수행케 한다. 이처럼 현재 실현중인 서비스는 모바일 민원, 도시 조명제어, 상수도 누수관리, 시설물 현장관리, 공공 방범 및 범죄, 재난재해, 차량번호 인식, 교통제어, 교통위반단속, 공영주차장정보, 대중교통정보 등 총 열다섯가지다. 통합운영센터엔 수요에 따라 다른 프로그램을 더 추가할 수도 있다.
도시민의 교통 수단 이용정보 및 안전 운전, 교통 흐름 등을 담당하는 'U-교통'서비스의 경우 교통 제어, 교통 약자 안전, 대중교통정보, 공영주차장정보, 교통위반단속 등 5개 서비스로 구분돼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각 버스 위치 및 도착시간을 확인할 수 있으며 노선별 흐름도 파악이 가능하다. 환경오염정보 및 기상정보의 수집분석, 정보공개 서비스인 'U-환경'도 판교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다.
▲ 오존, 일산화탄소 등 대기오염정보 ▲ 풍향, 풍속, 온도, 습도, 강우량 등 기상정보 ▲ 수질오염정보 등도 입주민들에게 수시로 제공된다. 통합운영센터 1년 운영비는 24억원이다.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와 관련, 성남시는 "지역 포털과 커뮤니티를 활용한 수익모델 개발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이 부분에 대한 민간의 관심이 부진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 판교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은="분당과 판교 사이엔 탄천이 흐른다"
탄천변을 따라 두개의 도시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한 도시는 낡아 퇴색된 반면 또다른 도시는 높고 낮은 새 건물들이 어울려 서로 대조를 이룬다. '신도시'라는 같은 명칭을 쓰기에는 왠지 낯설다.
지금 판교 사람들에게 '판교'라는 도시는 무엇인가 ? 얼마전 서울 강남 등이 CCTV를 늘릴 때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프라이버시 침해 등 인권 논란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
"판교는 안심할만한 도시다. 분당과는 전혀 다르다. 입주한 내내 인권 논란을 들어본 적 없다. 지금도 충분하지만 CCTV가 더 설치돼도 무방하다. 프라이버시가 침해된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안전한게 더 중요하지 않는가 ? 실제로 분당 주민중에도 안전 등의 이유로 이사 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쓰러진 노인을 입주민들이 자치적으로 구호한다든지, 범죄와 대응하기 위해 주민 자율방범대를 만드는 것보다 비용과 효율면에서 더 경제적일 수 있다. 판교가 어디 달동네도 아니고..."
백현마을 주민 박정일씨(53)씨의 의견이다.박씨는 주민들이 도시내 문제를 유대와 협력, 공동체적 활동을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통합센터와 경찰관, 각종 지원 프로그램에 맡기길 더 바란다는 심정을 숨기지 않는다. 프라이버시 침해도 여기선 논란거리가 아니라는거다. 그들은 스스로의 커뮤니티, 온화한 공동체마을 대신 통합운영센터같은 '빅브라더'(?)를 더욱 신봉한다.
과거 분당사람들이 '천당 아래 분당'이라며 선민문화를 만들었듯이 판교주민들도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도시에 새로운 신분을 입혀나갈 태세다. 개발시행자와 정부도 "세계에서 유례 없는 도시지 않는가 ?"라는 자부심외에 다른 철학적 사유를 거부한다.
'U-시티' 판교에선 분당 신도시 입주 당시처럼 다양한 커뮤니티가 폭발적으로 만들어지지도 않고 있다. 정보통신기술과 교통여건, 생활 편리가 가져다준 영향인지는 아직 사회적 연구는 부족하다. 또한 'U-시티'때문인지도 확고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판교의 어느 마을에서도 공동체정신이 강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이 판교주민이 잃은 것이라면 집값은 확실히 얻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유사한 평형인 분당 까치 신원 103㎡와 판교 백현마을 98㎡은 각각 3억6000만∼4억원, 7억∼8억5000만원의 시세를 이루고 있다. 두배 차이다. 물론 두 도시의 집값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온덮개로 루핑한 판자촌, 달동네에서부터 계획신도시까지 우리의 주거공간이 천태만상인 것처럼 분당과 판교는 탄천을 경계로 다른 빛깔을 띠고 있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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