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최고 지도자들과 지자체의 장들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요즘 매우 궁금하다. 모두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고 하고 또 시민의 숭고한 뜻에 따르겠다고 말은 하는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말이 내 가슴에 와 닿았던 적이 언제인가.
과반수는 고사하고 많아야 유권자의 30% 정도의 득표로 당선되는 최고 지도자나 지자체의 장들이 취임한 이후 그 행보를 살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나머지 70% 정도를 적으로 보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경향이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의 정서라면 참으로 큰일이며 70%를 끌어안으려는 시도보다 30%에 목을 매는 정치를 하고 있다면 패거리 정치라는 기존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지난 10월 신임 서울시장도 기존의 시장들과 비슷한 득표율로 당선됐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유권자의 26%가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장이 시장이 되는 획기적 변화는 시민들의 소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도 그 지지율에 내포돼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서울시 시장의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나머지 유권자들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1800년 전 고구려 시대에는 진대법이라는 게 있었다. 왕이 사냥을 갔다가 걸인을 만나서 불쌍한 사정을 듣고 이를 불쌍히 여긴 나머지 고국천왕이 곡식을 먼저 꾸어주고 나중에 서민이 농사를 지어 국가에 갚는 제도였다고 하니 그 당시로서는 선진제도였을 법하다. 반대파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다. 이러한 선조의 지혜가 지금 대한민국을 선진국 반열로 이끌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시계획은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하나의 도로를 조성하고 하나의 건축물을 지을 때마다 풍수지리의 기운을 고려한 도시발전의 축을 설정한 후에야 시행됐으며, 조속히 추진하면서도 세밀하게 조정함으로써 대세를 그르치지 않는 기법을 써서 결과적으로 그 도시가 천기를 모을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 왔다. 서울 한양의 천도가 그랬고 수원 화성의 축성도 마찬가지였다. 왕조가 바뀌었다고 그 방향을 함부로 뒤틀어 놓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 한양은 지금 세계적 도시가 됐고 그 도시를 수도로 가진 대한민국은 유사 이래 가장 빨리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나라가 됐다.
하지만 최근 서울시 주변에서는 시장이 바뀌었다는 핑계로 지난 시 정부에서도 백년지대계라고 하며 야심차게 세운 기존 도시계획의 틀을 전면 재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 시장이 들어설 때마다 백년지대계라고 하며 수립한 도시계획은 어찌해 십 리도 채 가지 못해서 발병이 나고 마는 것인지 의문투성이다. 그런데 더 의아한 것은 지난 시 정부에서 당시의 계획을 수립했던 행정가나 전문가들이 또다시 다른 계획을 수립하는 데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단 서울시뿐만이 아니라 모든 도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선조들의 정치 철학이 시정을 이끌어갈 지도부에 존재한다면 각 도시의 도시계획을 백년지대계라고 믿고 따라오던 수많은 시민의 입장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새 시대를 열어갈 또 다른 계획을 수립하기 전에 이미 수많은 시민들이 심은 씨앗을 혜량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피와 눈물과 땀과는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 하늘의 법칙인 것이다. 도시의 곳곳에는 시민들이 먹고살기 위해 뿌린 미래의 씨앗이 심겨 있다. 그 씨앗이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한다면 미래의 도시를 가꿀 수 있는 희망도 제작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표현일까.
윤주선 한호건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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