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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성난 교육民心 달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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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성난 교육民心 달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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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황석연 기자]어젯밤 늦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10년째 고3 담임을 맡고 있는 대학 선배의 안부 전화였다. 강남도 아닌 서울 서남부에 위치한 평범한 일반고에서 고3 담임을 맡고 있는 40대 교사의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의욕이 떨어져 있었다.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네. 정시라고 해봐야 성적 좋은 특목고 아이들 차지지. 우리 애들은 갈 대학이 없어."


그나마 공부 좀 하는 애들도 수시 때 이리저리 뛰어다녀 간신히 서울 근교 학교 들어가기 바쁜 게 일선 학교의 현실이라는 얘기였다. 30명이 조금 넘는 고3 교실에서 대학을 가지 못하는 20여명의 아이들에게 졸업 전 마지막 추억거리를 찾아주려 한다는 말은 그나마 위안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좋은 아이디어 좀 내보라는 말에 모처럼 잔꾀를 부려야 했다.

하지만 해 줄 말이 없었다. "좌절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냥 배낭 메고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봐. 세상은 넓잖아. 아이들이 철들면 다 자기 몫을 하지 않을까?…"


답답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인슈타인도 공부를 잘하지 못했고, 정주영씨도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았지만 당당하게 대기업을 일구지 않았느냐는 얘기를 해주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주어도 '아이들은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면 언젠가 자기 몫을 한다'는 믿음으로 20년 넘게 교사 생활을 해온 선배에게 힘이 되어줄 수는 없었다. 11월30일.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 성적이 나왔지만 지난해와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전화를 끊자마자 지난 3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11학년도 수능결과를 분석해 내놓은 자료를 다시 뒤적여 보았다. 이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속으로 웃음을 지은 것은 학원가뿐이라는 당시 기사들이 검색됐다. 결과부터 얘기하면 '중3 학생들의 선발권을 가진 학교를 선택한 학생들의 수능 성적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외국어고ㆍ과학고와 같은 특목고는 물론 전국 단위에서 학생들을 선발하는 자립형사립고등학교, 농산어촌 기숙형 고교들이 높은 성적을 거둔 것이다. 초ㆍ중학교 시절부터 시간과 비용을 집중적으로 투자해 자녀들을 특목고와 명문고에 진학시키려는 학부모들의 선택이 좋은 수능 결과와 연관된다는 그동안의 학원가 지적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기사였다.


오늘 오전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서울 구현고를 찾았다. 2011년 국가 수준 초ㆍ중ㆍ고교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발표하기 위한 자리다. 올해 처음 분석해 공시한 이 자료는 성적이 오른 100개 고교의 명단이 발표돼 화제를 모았다. 평가 결과에 따르면, 자율형 공립고와 자율형 사립고의 학업성취도 향상이 월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이 장관이 찾은 구현고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물론 이 학교는 서울 강남이 아닌 서남부에 위치해 있다.


지난해부터 자율형 공립고로 전환해 첫해 경쟁률 7.6대 1, 올해 경쟁률도 6대 1을 기록하는 등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교로 떠오른 이 학교의 성공비결은 '자기주도학습'을 강화한 데 있다고 한다. 열정 있는 교사들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날 구현고를 찾은 이 장관에게 세간의 교육 민심을 제대로 전달한 관료가 있었는지는 의심이 든다.


이번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학부모들의 주요 관심사인 대학입시 결과와 직결시킬 수 없는 것(자율형 공립고로서 구현고의 첫 대학입시 결과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이라는 사실과 구현고로 인해 서울 서남권의 인재를 빼앗긴 인근 일반고의 또 다른 좌절감(고3 담임교사를 맡고 있는 대학 선배가 근무하는 학교)은 어떻게 달랠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이날 구현고를 찾은 이 장관의 이름 석 자를 자꾸 들먹이는 이유는 그의 행보가 좀 더 낮은 곳으로 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황석연 기자 sky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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