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을 둘러싼 주민투표와 뒤이은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의 복지 논쟁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우리나라 경제 수준으로 볼 때 무상교육의 연장선상에서 무상급식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선심성 복지를 남발해 재정이 파탄 나고 만성적 국가파산 위기를 겪는 그리스와 유럽 국가를 보면서도 복지를 부르짖는 어리석음에 대해 우려하는 의견이 엇갈렸다.
지금은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둘러싼 논쟁이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양측이 다 그럴듯한 숫자를 인용하고 확신에 찬 의견을 제시하기 때문에 국민으로선 누구 말이 맞는지 헷갈릴 법하다. 내년 총선을 의식한 복잡한 정치적 계산법 때문에 여야의 논쟁은 단순한 경제적 토론이 아니라 정치적 행위, 시간을 끌기 위한 통과의례로 비쳐지는 측면도 있다.
복지나 FTA나 대체 누구 말이 맞는지 머리 복잡한 사람들에게 약간의 판단 기준을 제시하기 위한 경제적 관전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경제 60년사에서 외국과 협정을 맺을 때는 예외 없이 내부 반발이 극심했다는 점이다. 경제개발을 위한 차관을 들여올 때는 야당이 외채망국론을 부르짖었고, 우르과이라운드 때는 협상단이 계란 세례를 맞았으며, 한ㆍ칠레 FTA를 맺을 때도 극심한 반발이 있었다. 한국은 그런 반발 과정을 거치면서 대외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FTA 추진은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태생적 운명, 최선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봐야 한다.
둘째, 그렇다고 해서 반대 여론이 틀렸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반대는 필요하다. 반대가 있어야 토론이 되고 쟁점이 분명해지며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부작용을 예방하는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야당이 외채망국론을 부르짖고 강하게 비판했기 때문에 외채에 대한 경각심이 생겨났고 빚을 무서워할 줄 알게 되지 않았던가.
셋째, 한ㆍ미 FTA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바로 '영구한 제도 변화'라는 점이다. FTA가 통과되면 절대로 무르거나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성이 발생한다. 우리 경제, 그리고 우리 사회와 제도는 영원히 그전과는 다른 경로로 접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투자자ㆍ국가소송제도(ISD)가 FTA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ISD는 FTA 협정을 맺은 국가의 기업이 상대 국가의 정책 때문에 손해를 봤을 때 상대국을 제3의 중재기구에 제소해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인데, 국제상사재판의 경우 사실상 미국의 영향력하에 있어서 미국에 유리하게 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고 한국의 사법주권이 침해된다는 것이다.
한번 결정되면 영원히 못 고치는 제도라면 그 경로에 접어들기 전에 최대한 고칠 것은 고치고 예방할 것은 예방해 두는 것이 옳지 않은가. 현실적으로 재협상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야당의 반대를 계기로 해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전에 손을 써 둘 여지는 없는지 내부 제도를 들여다보는 것이 훨씬 현명할 것이다.
복지 논쟁에 대한 관전 포인트도 동일하다. 복지는 국가가 수없이 많은 국민에게 뭔가를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격변이나 아노미 상태를 각오하지 않는 한 절대로 무를 수 없는 비가역성이 있다. 무상급식이야 그리 큰 예산이 아니고 국가의 백년동량을 키워내는 생산적 투자로 볼 수 있지만 행여라도 내년 총선을 겨냥해 여야가 비생산적 복지 경쟁을 벌인다면 선심성 복지의 비가역성은 부메랑이 돼 10년 후 내 미래를, 20년 후 내 자녀의 미래를 강타할 것이다. 영원히 고치지 못하는 경제적 선택은 이미 흘러가 다시 오지 못하는 시간만큼 우리 삶에 가혹한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실버산업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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