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저지른 '불법거래'를 고백하고자 한다. 집에서 쓸 노트북 컴퓨터를 사기 위해 찾아간 어느 전자상가에서의 일이다. 바겐세일 중이라는 점포에서 물건 하나를 골랐다.
"65만5000원입니다." 전자계산기로 할인율을 능숙하게 두드린 직원이 '더는 안 된다'는 듯이 가격을 제시한다. "현금으로 계산하려는데 얼마까지 더 해 줄 수 있으세요?" 직원이 다시 뽑은 계산기 숫자를 보여준다. "62만원에 드릴게요." 나는 은근슬쩍 다시 떠본다. "현금을 드리는데 부가가치세 정도는 빼 주셔야지…." 직원이 정색을 하며 손사래를 친다. "저희는 절대 그렇게 안 해요. 현금영수증을 확실하게 끊어 드립니다."
흥정은 그렇게 5% 더 할인받는 것으로 끝났다. 불필요해진 카드 가맹점 수수료에다가 현금결제에 대한 사례금을 덤으로 붙여 깎은 셈이다.
하지만 이런 거래는 여신금융업법 제19조를 위반한 것이다. 현금 결제자를 우대한 것은 '신용카드 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하지 못한다'고 한 1항과 '가맹점 수수료를 카드 회원이 부담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한 3항에 저촉된다. 바로 여기에, 논란을 거듭하면서도 해법 찾기는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인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문제의 본질과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현금으로 사봐야 전혀 혜택이 없는 소비자로서는 편리하면서, 무이자 외상거래로 금융이익을 얻을 수 있고, 소득공제 혜택까지 받는 카드거래를 '당연히' 선택하게 된다. 판매자는 매출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카드결제분의 가맹점 수수료를 '당연한' 원가로 감수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금으로 구매하는 소비자는 자신과 무관한 가맹점 수수료 일부를 대신 부담하는 꼴이 된다. 카드결제를 실질적으로 강제하고 있는 현행 법률 조항들은 그래서 불공정하다.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물론 이러한 법조항이 그동안 국가경제에 기여한 바도 많았을 것이다. 거래가 투명해져 보다 공평한 과세가 가능해진 점이 그중 하나라고 하겠다. 그러나 '현금 영수증' 제도가 도입된 뒤부터는 명분이 사라졌다. 이제 와서 이 법조항이 기여하고 있는 것은 카드 회사와 결제서비스 대행회사(VANㆍValue Added Network)의 수익증대 말고 뭐가 더 있겠는가.
결제수단을 선택할 자유를 제한한 현행 법률은 헌법의 '과잉금지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나,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는 없다.'(헌법 제37조 2항)
여신전문금융업법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해 달성하려는 목적이 무엇인가. 이것 말고는 다른 수단은 없는가. 국민이 입는 피해보다 더 큰 공익을 여전히 얻고 있는가. 따져봐야 할 일이다.
이 법조항들이 문제의 본질이기에, 해결책은 이를 폐지하는 데 있다. 불필요한 수수료가 사라짐에 따라 상인과 현금구매 소비자들의 부담이 줄어들 것임을 기대할 수 있다. 얼마나 할인해 줄지, '푼돈'인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소비자에게 돌려줄 것인지는 전적으로 상인들의 창의력에 맡길 일이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있을 수 있다. 가맹점들이 현금 가격을 내리지 않고 독식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런 것까지 정부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시장의 강력한 힘이 이런 상인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경쟁시장에서 자유로운 거래로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정부의 강제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낳는다. 이것이야말로 최근 정부가 그토록 지키려 애썼던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 아닌가.
안근모 증권전문위원 ahnkm@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