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번째 이력서. 지하철 등 서울시내 곳곳에 붙어 있는 광고카피다. 광고주체는 전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인 2009년 서울시가 만든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 열심히 일자리를 알선했다지만 사정은 계속 나빠지고 있다. 급기야 일자리 문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선거 승패를 가른 것은 20~40대의 분노였다. 분노는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양산, 양극화 등 일자리와 직결된다. 88만원 세대로 대변되는 비정규직은 공식 통계로도 600만명에 육박한다. 101번째 이력서도 안 통해 '장미족'(장기간 미취업 상태)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을 거쳐 '삼태백'(30대 태반이 백수) 신세로 전락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정치권도 뒤늦게 이를 감지한 모습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 이튿날 "선거에서 보여준 젊은 세대들의 뜻을 깊이 새기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자신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고용률을 경제정책의 중심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장보다 고용ㆍ복지를 중시하겠다는 '박근혜식 경제해법'으로 성장 중심 MB노믹스와의 차별화에 나섰다. 현직 대통령과 차기 유력 대권후보의 공언대로 정부정책을 움직이려면 제대로 된 고용통계는 필수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용통계는 부실의 대명사다. 현실은 구겨진 101번째 이력서에서 보듯 실업자가 널렸는데, 통계는 9월 실업률 3%로 완전고용 수준이고 청년실업률도 6.3%로 선진국보다 낮다. 바로 '지난주 1시간 이상 일하지 않았고, 4주 동안 구직활동을 했을 것'이란 엄격한 설문조사 방식 때문에 실업자로도 대접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 그렇다. 57만여 취업준비생은 독서실과 학원을 다니며 준비만 하지 구직활동을 안 했다는 이유로 실업자에서 빠진다. 이러저런 사정으로 쉰다는 165만여명과 구직 단념자 20만여명 또한 같은 이유로 실업자 축에 못 낀다. 알바ㆍ시간제ㆍ일용직도 일주일에 1시간 이상 일했다는 이유로 실업자가 아니다.
오죽하면 지난달 말 국책 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까지 나서 통계청 조사방식이 너무 까다롭다고 지적했을까. 이론이 제기되면 공론화해 바로잡아야 할 텐데 두 기관이 영역다툼만 벌였다. 통계청장이 항의하자 KDI는 홈페이지에서 보고서를 내렸다. 통계청이 거듭 해명자료를 통해 KDI 보고서를 조목조목 반박하자 KDI도 질세라 추가설명 자료로 맞섰다.
통계청 조사방식이 국제 기준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경직된 기준의 공식 실업률만 내놓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구직 기간 4주의 공식 실업률 U3 외에 보다 엄격한 의미의 U1ㆍU2, 넓은 의미의 U4~U6 등 5가지 보조지표를 함께 발표한다. 9월 공식 실업률은 9.1%인데 공식 실업자 외에 구직 단념자, 한계 근로자, 시간제 근로자까지 합친 U6는 16.5%에 이른다. 캐나다도 비슷한 개념의 대체실업률(R1~R9)을 발표한다.
우리 통계청이 '낮은' 공식 실업률만 고집하니 정권은 반길지 몰라도 국민에게서 불신뿐 아니라 왜곡한다는 오해까지 받는다. 통계의 문제점을 꼬집은 언론보도에 대해 통계청이 해명자료를 낸 경우도 고용 분야가 가장 많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해명자료 208건의 4분의 1인 52건이 고용통계다. 공식 실업률 달랑 하나 갖고 주무르기보다 여러 보조지표를 공유하면 현실 파악도, 대책 세우기도 용이하다. 일자리 찾는 젊은이도, 사람 구하는 기업도, 인력 양성하는 학교도 함께 알고 도우면 힘이 된다.
내년 양대 선거의 이슈는 일자리와 복지다. 일자리 없는 복지는 모래성이다. 남유럽 위기에서 보듯 구멍 난 재정 지갑에서 마구 빼내 쓰다가는 패국망신(敗國亡身)한다. 벌써 11월, 졸업앨범 사진도 찍었다. 젊은이들이 쓰고 또 다시 쓴 101번째 이력서를 부활시키려면 고용통계부터 바꿔야 한다.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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