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탔다 북한 갈 뻔?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국내 항공사의 조종사 인력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거세게 일고 있다.
화물기 추락에 이어 음주 비행을 하려다 적발된 사례가 잇따랐고, 이번에는 대한항공 현직 조종사가 종북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는 등 올 들어 항공 업계 초유의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고 있는 것.
승객의 목숨을 최일선에서 책임지는 운항승무원에 대한 항공사의 인력 관리법이 보다 엄격하고 체계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지난 18일 종북 사이트인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에 가입해 활동한 혐의로 대한항공 조종사 김모(45)씨의 거주지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개인용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은 문서 등을 확보하고 김씨를 출국금지했다.
대한항공 측에는 "김씨가 항공기 운항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하라"고 통보했고 해당 항공사도 이를 받아들인 상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모든 비행 업무에서 즉시 배제시켰고 검찰의 수사에 따라 위법 사실이 확인되면 추가로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노작(勞作)' 등 북한을 찬양하는 글 수십건을 올린 김씨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찬양ㆍ고무 규정을 적용키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호기심 차원을 넘어 북한 체제를 옹호하고 선전하는 글을 사이트에 지속적으로 게재했다"면서 "돌발 행동에 대한 우려가 있어 출국 및 조종 금지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관련 업계는 물론 인터넷상에서도 '황당하다'는 의견이 줄을 잇고 있다. 한 네티즌은 "테러분자에게 여객기 조종을 맡긴 것이나 다름없다"며 "아찔하고 소름 끼치는 일"이라고 전했다.
올 들어 조종사와 관련한 사건사고가 유독 많았던 점을 지적하면서 '안전 불감증'을 염려하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실제 올해는 우리나라 항공 업계에 불미스런 일이 자주 발생했다.
지난 7월28일에는 인천공항을 이륙해 중국 푸동공항으로 향하던 아시아나항공 소속 화물기 991편이 제주 서쪽 약 130km 해상에 추락한 이래 원인 규명이 차일피일 늦춰지고 있다. 사고 화물기에 탑승한 2명의 조종사 가운데 기장이 거액의 보험을 가입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음주 기장' 적발 건수도 잦았다. 대형사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저비용 항공사 중에서는 이스타항공의 기장이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조종간을 잡으려다 적발됐다. 논란이 거세지자 국토해양부는 항공 업종 종사자에 대한 혈중 알코올 농도 단속 기준치를 0.04%에서 0.03%로 강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내용을 담은 항공법 개정안을 6월 말 입법예고했다.
'조종사 빼가기' 공방도 치열했다. 대한항공과 에어부산이 조종사 인력 이탈을 놓고 전면전을 치른 뒤 소강 국면 상태다. 하지만 조종사 수급 불안정에 대한 고질적 문제가 남아 있어 조종사를 둘러싼 다툼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조종사 수요가 턱없이 부족해 외국인 인력을 고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양질의 조종사를 양성하지 못 한 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달 기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는 각각 2100명, 1200명 수준이다.
김혜원 기자 kim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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