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공순 기자]유럽발 위기가 미국으로 확산되면서 전세계적인 신용경색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투자은행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이 폭등하고, 신흥시장에 투자되었던 미국계 자금마저 이탈 조짐을 보이면서 각국의 환율이 요동치고 주가가 폭락하는 등 극심한 금융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현지 시각) 미국의 대표적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가 유럽에서 자금조달난을 겪어 유동성 위기의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유럽계 은행의 신용경색이 미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FT는 전했다.
모건 스탠리와 같은 투자은행은 일반 상업은행과는 달리 자금 조달을 도매자금시장 (wholesale market)에 의존해왔다. 22일 모건스탠리의 5년치 신용부도스왑 (CDS)은 397bps를 기록해 2년반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이는 모건스탠리의 부채 1천만달러를 5년간 보증하는데 397000달러가 든다는 뜻이다. 또 다른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CDS도 292bps로 2009년 봄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또 미국의 머니마켓펀드의 유럽 위험 노출(exposure)도 계속 축소돼, 8월에는 전달 대비 550억 달러 줄어든 2846억 달러를 기록, 2006년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와 함께 블룸버그통신은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유럽계 은행들의 ‘펀딩 갭’(조달해야 할 자금)이 무려 4조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유동성 악화로 유럽계 은행들의 대부분이 단기 달러 자금 조달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 조건에서 이같은 규모의 펀딩 갭은 이후 은행의 연쇄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또 미국 연방은행과 유럽중앙은행 사이의 달러스왑라인 개설에도 불구하고 유럽 은행의 달러 자금줄 말랐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관련, FT는 유럽 각국이 공적 자금 투입을 통해 유럽계 은행의 자본재구조화 (recpitalization)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달러 강세가 심화되어 22일 미국 뉴욕상품시장에서 1유로에 1.35달러를 하향했으며, 미국채를 제외한 모든 자산의 투매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2일 유럽 및 미국의 증시는 각각 4%, 3% 이상씩 폭락했으며 금값 및 원자재(석유 및 구리)도 폭락세를 나타냈다.
반면 미국채 수익률은 30년물이 이틀간 0.44%p 하락해 2009년 1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30년물과 2년물 수익률차는 259bps로 지난 2008년 2월 이후 가장 좁아졌다.
또 이처럼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신흥시장 자본 유출 급증하여 환율급락세를 보였다. 이는 신흥국이 세계 금융위기에 관여하면서 경제침체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투자자들이 이들 국가에서 발을 빼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또 월스트리트저널은 투자자들은 7월 말부터 그리고 트레이더들은 지난주부터 신흥국의 위험을 감지하고 돈을 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신흥시장 국가에서의 자본 유출로 유동성 위기가 닥쳐오고 있으며 그동안 아시아에서 가장 강세를 보여왔던 인도네시아는 22일 하루동안 주식시장이 9% 이상 폭락하고 환율이 지난 일주일동안 6% 이상 하락하는 등 극심한 혼란상태에 빠졌다.
브라질 레알화도 달러 대비 6% 하락, 브라질 중앙은행이 통화 안정을 위해 긴급 개입했다.
이처럼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선 것은 무엇보다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정책 변화 때문이다.
지난 21일의 공개시장위원회에서 결정된 operation twist는 유동성 완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지난 60년대에 이와 동일한 정책이 취해졌을 때의 역사적 경험상 ‘달러화 강세’를 기저에 깔고 있는데다, 연준이 경기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년 상반기까지는 자산매입과 같은 방식의 시장에 직접 자금을 푸는 유동성 확대 조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시장에 불어넣었다.
즉, 지난 2008년 이후 연준이 취해왔던 ‘달러 약세’ 정책 기조를 사실상 뒤집는 것으로 시장에서는 인식하고 있다.
여기에 유럽발 위기가 겹치면서 연준의 의도가 어땠던지 간에 달러화 강세는 신용 위축의 결과로 이어지고 있으며 달러화로 표시된 모든 금융자산의 연쇄매도를 불러오고 있다. 동시에 국채 수익률이 낮아지면서 여기에 투자하고 있는 은행 및 연기금 등의 수익률도 같이 낮아지기 때문에 금융산업은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됐다.
따라서 현재 금융산업은 유럽의 부채 위기에 따른 시스템 리스크와 연준의 정책에 따른 이윤 감소라는 이중의 압박을 받게 되었으며, 이는 다시 신흥시장으로 투자된 선진국 자본의 광범한 환류 현상을 불러오고 있다.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다.
브라질 중앙은행 총재는 23일 “연준의 Operation Twist는 미국의 '은밀한 통화전쟁'이며 신흥국에의 자본 유입을 불안정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면서 “세계 통화체제가 지난 50,60년대의 브레튼우즈 협정 하의 고정환율제로 다시 되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또 세계 최대의 채권펀드인 핌코의 공동 CEO인 엘-에리안은 “세계는 지금 새로운 금융위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공순 기자 cpe101@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