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극복의 날' 보건복지부 장관상 받은 김종렬씨
[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 요 며칠 새 바람이 제법 쌀쌀해졌지만 김종렬(67)씨는 오늘도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선다. 집에만 있는 아내에게 바깥 세상을 구경시켜주기 위해서다. 혹여 찬바람이 들어갈까 아내의 옷깃을 단단히 여미어주고는 아내가 탄 휠체어를 밀며 세상 밖으로 나간다.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며 산책길을 거닐 수는 없지만, 이마저도 김씨에게는 감사한 일이다.
김씨가 아내의 건망증이 심해졌다는 생각을 한 때는 지난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내는 걸핏하면 친구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때로는 친숙한 버스 번호 조차 기억하지 못하곤 했다.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는 생각에 진료를 권했지만 아내는 완강히 거부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몇 달 후 김씨의 아내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치매는 초기가 중요한데 증상이 건망증과 비슷하고 또 그 나잇대 여자들이 갱년기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다"며 "완강히 거부하는 아내를 이끌고 병원에 갔더니 이미 치매가 진행된 상태였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 때 부터 김씨는 아내의 손과 발이 되어 하루 종일 아내의 곁을 지켰다. 그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9년이 지난 현재, 아내는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의사소통을 전혀 할 수 없는 중증 환자가 됐다. 그는 "지금은 9년이나 흘러 치매 초기 때보다 상태가 더 악화됐다"면서 "아내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표정이나 그 때 그 때의 상황을 봐서 아내의 마음을 읽는다"고 말했다.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그이지만 늘 웃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온종일 아내 곁을 지키다보면 때로는 화를 낼 때도 있다. 그런 그에게 최근 힘을 덜어주는 이가 있다고 한다. 바로 요양보호사다. 지난 2008년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거동이 불편한 65세 이상 노인 또는 치매ㆍ중풍 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 가정을 요양보호사가 직접 방문하거나 이들을 전문시설에 입소시켜 돌봐주는 제도다.
그는 "아내의 곁을 지키는 일이 익숙해졌지만 그동안 미뤄온 일과가 많았다"면서 "멀리는 못 나가도 도우미 덕분에 얻는 하루 네 시간은 나에게 정말 소중하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김씨는 치매환자의 가족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가족의 치매진단을 수긍하기 어렵겠지만,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보호자가 힘들다고 내색하면 환자도 다 느끼기 마련이라, 힘들겠지만 사랑으로 견디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치매라는 사실을 숨기고 집에만 있지 말고 하루 빨리 사회로 나와 관련 협회라든가 모임에서 많은 정보를 얻는 것이 좋다"면서 "환자의 건강만큼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보호자의 건강"이라고 강조했다.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아내의 곁을 묵묵히 지켜온 김씨는 20일 '제4회 치매극복의 날'을 맞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이날 김씨 외에도 치매환자를 가정에서 돌보고 있는 배우자와 자녀, 치매 진료에 헌신하는 의사와 요양보호사, 국가치매예방관리사업 담당 공무원 등 65명이 장관 표창을 받았다.
박혜정 기자 parky@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