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에서 불기 시작한 고졸 출신 채용 바람이 은행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은행연합회는 지난주 18개 은행이 오는 2013년까지 2722명의 고졸 출신을 뽑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해 평균 907명으로 지난 2년간의 평균 459명의 두 배 수준이다. LGㆍ포스코ㆍ삼성 등 대기업들도 고졸 기능직 사원 채용 인력을 늘리는 등 고졸 채용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학력 인플레이션과 고졸 취업난 해소라는 측면에서 고졸 채용 바람이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정부가 등 떠미는 식은 곤란하다. 금융사별 업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고졸 채용을 늘리라는 건 일시적으로 고졸 채용을 늘리는 효과는 있겠지만 얼마나 지속될지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금융위원회가 지난주 증권ㆍ보험 등 금융 관련 협회에 회원사의 고졸 채용 계획을 취합해 제출하라고 한 것은 적절하지 못한 처사다.
일부 금융사는 말만 앞세운 채 채용 시기나 인원도 정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는 채용한 뒤 무슨 일을 시켜야 할지 고민이라는 곳도 있다고 한다. 고졸 채용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필요에 따라 준비를 제대로 해서 채용하는 게 순리다. 직무 분석을 통해 고졸 인력에게 적절한 업무 분야를 가리고 연봉 수준 등 구체적 기준을 마련한 뒤 채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고졸 채용은 바람직하지만 경계해야 할 부분도 있다. 은행권의 경우 산업은행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고졸 행원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고 하지만 정규직에 못 미치는 대우를 받는 건 마찬가지다. 임금이나 승진에서 차별이 없어지지 않는 한 비정규직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
고졸 채용을 정착시키려면 정부, 기업, 취업자 모두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대졸자 우대'의 그릇된 관행을 고치는 일, 고졸 취업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임금과 승진에서의 차별을 개선하는 법적ㆍ제도적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 과제다. 심각한 학력차별이 없어지지 않는 한 고졸 채용은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 말마따나 "대학에 가는 것보다 고등학교만 가도 취업하기 쉬운, 그런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