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관용어에 'when pigs can fly(돼지가 날 때)'라는 말이 있다. 돼지에 날개가 돋을 리 없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 절대로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경우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엄청난 재정적자와 대외부채로 국가부도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일단의 유럽 국가들, 즉 포르투갈(P)ㆍ이탈리아(I)ㆍ아일랜드(I)ㆍ그리스(G)ㆍ스페인(S)을 지칭하는 중의적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돼지가 날 수 없는 것처럼 무거운 재정적자에 휘청거리는 이들 국가의 경제가 다시 도약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당장 국가부도 위기를 맞고 있는 나라가 그리스다. 유럽중앙은행이 그동안 강경한 자세를 보이던 독일을 설득해 구제금융과 채무조정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2차 구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3차, 4차 재정위기가 또다시 벌어질 수 있고 그 여파는 두고두고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것처럼 국가부도 사태가 나면 해당 국가에만 문제시되는 게 아니다. 복잡한 금융거래 네트워크를 타고 금융 쓰나미가 전 유럽으로 확산될 것이고 이후 실물과 무역 부문으로 퍼져나가면서 한국 등 지구 반대편에 있는 국가들까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미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미국의 희망'을 외치면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는 엄청난 재정적자 때문에 미국 역사상 최초로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를 선언하는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의 경우 대외지급 불능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지급 불능이 문제가 되고 있다. 민주ㆍ공화 양당의 초당적 적자감축 추진 6인 그룹인 '갱 오브 식스(Gang of 6)'가 향후 10년 동안 지출을 줄이고 세수를 높여 3조7000억달러의 적자를 줄이는 방안을 발표함으로써 재정적자의 법적 한도를 높일 수 있는 정치적 실마리를 찾고 있지만 재정적자의 법적 한도를 높인다고 한들 상황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이 겪고 있는 재정적자의 재앙은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한국도 무서운 속도로 재정적자가 커지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의나 경제성을 따지지 않는 '그들만의 국책사업' 때문에 재정이 엄청나게 축나고, 총선 때마다 표를 의식한 선심성 공약 때문에 재정적자는 계속 커지고 있다. 세수 측면에서도 일부 수출기업, 대기업만 돈을 벌고 있을 뿐 중소 내수기업이나 자영업의 불황이 심화되면서 국가재정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예산 공무원들이 뚝심 있게 버티면서 세수 내에서만 예산을 집행했던 재정건전성에 대한 신화는 이미 실종된 지 오래다. 공기업이나 지자체의 적자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경제성 없는 사업에 돈을 쏟아부은 일부 지자체는 약속했던 돈을 돌려주지 못하고 채무 재조정을 해야 하는 사실상의 디폴트 상태다. 미국과 유럽이 겪고 있는 재정위기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수 없는 복잡한 심사가 되는 이유도 이 같은 우리 내부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재정의 불건전성은 '세대 간 부의 이전' 같은 모호한 경제적 수사로 숨겨서는 안 되는 중대한 질병이다. 그 질병은 당뇨병이나 암처럼 평소에는 음습하게 숨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동시에 다시 회복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건강할 때 건강을 관리해야 하는 것처럼 한국 경제가 아직은 견딜 만한 상황일 때 재정적자의 무거운 짐을 줄여야 한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재정적자를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지킬 수 있도록 한국판 초당적 'Gang of 6' 그룹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또한 지자체의 경우 경제성 없는 사업에 방만한 낭비를 하는 지자체장에 대해 책임을 좀 더 쉽게 물을 수 있는 법적 조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할 것이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실버산업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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