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설립 허용 첫날인 지난 1일 전국 76개 사업장에서 노조설립신고서가 제출됐다고 한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복수노조 설립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근로자에게 노조 선택권을 보장하고 소수 근로자의 권익도 보호하려는 도입 취지에 걸맞은 흐름이라 할 수 있다. 고무적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양대 노총에서 떨어져 나온 복수노조가 많다는 것이다. 76개 가운데 무노조 사업장 5개를 제외하면 복수노조 사업장은 71개다. 이 중 상급단체 미가입 사업장은 11개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노총 소속 노조에서 분리돼 나온 것이 32개, 민주노총에서 분화한 것이 28개에 이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76개 가운데 72개는 상급 단체를 두지 않는 독립 노조라는 사실이다.
이는 기존 노조가 근로자 전체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불만 때문에 신규 노조를 설립했다는 의미다. 양대 노총 중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노동운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는 방증이다. 노조도 이젠 경쟁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경쟁이 지나치면 노노 간 갈등이 벌어지고 노사관계도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양대 노총과 정치권 일각에서는 교섭창구 단일화가 단체교섭권을 제한하고 소수 노조의 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시행 후에 문제점이 드러나면 보완책을 마련해도 늦지 않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현행 법은 노사가 합의하면 소수 노조도 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는 등 소수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두고 있다. 제대로 시행도 하기 전에 부작용부터 예단하는 것은 성급하다.
복수노조가 잘 정착되면 투쟁 일변도가 아닌 근로자 복지 개선에 노력하는 합리적인 노동운동이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무노조 사업장들도 복수노조에 불안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건전한 노조가 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 인식이 필요하다. 노사정 모두 예상되는 초기의 갈등과 혼란에 잘 대처해 복수노조가 빠른 시일 내에 정착할 수 있도록 힘써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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