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부도 위기를 겨우 넘겼다. 펄펄 끓는 원자로에 찬물을 끼얹어 달래 놓은 모습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과 유사하다. 가공할 재앙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시 둘은 닮은꼴이다. 빚이 너무 많다는 게 그리스 재정위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첫째 이유다. 지난해 그리스는 국내총생산(GDP)의 5.5%를 오로지 이자 갚는 데에만 써야 했는데, 앞으로는 그 부담이 6% 이상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원금은커녕 제때 이자 내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이런 형편에서 벗어나려면 정부부채 비율을 100% 이하로 낮춰야 하는데, 원리금을 50% 이상 탕감해줘야만 가능하다는 게 BNP파리바의 분석이다. 하지만 원금 탕감은 '부도'와 다를 바 없기에 논외 항목이다.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그래서 그리스 채무를 '장기 초저금리'로 바꿔주자고 제안한다. 독일 국채 수준의 금리(3.5%)를 20년간 적용하게 되면 그리스가 정부부채 비율을 70%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삭스 교수의 제안에는 두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첫째는 유럽 각국의 보증이다. 그리스의 조달 금리를 낮춰줄 핵심 장치이다. 이는 동시에 그리스 국민이 진 빚을 독일, 프랑스 등 여타 국민이 대신 갚아줄 수 있다는 의미다. '대단한' 저항이 불가피하다. 유럽연합 국민들은 그동안의 구제금융 지원을 통해 이미 한 가구당 약 83만원꼴로 그리스 빚을 보증해 준 상태다. 삭스 교수 제안의 두 번째 전제는 '연간 3%의 경제성장'이다. 그러나 그리스는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 중이고, 미래는 더 어둡다. 그리스를 비관적으로 보는 두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유럽정책연구센터(CEPS)에 따르면 그리스가 계획대로 오는 2014년까지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줄일 경우 경제가 성장하기는커녕 무려 31%나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 지출에 유난히 의존해 온 경제구조 탓이다.
지나치게 고평가된 환율을 10년간 사용해 온 것이 그리스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유로화 체제 출범 때부터 안고 온 구조적 결함이다. 수출은 안 되고 수입만 늘다보니 적자재정으로 경제를 끌어갈 수밖에 없었다. 같은 화폐를 쓰는 독일은 날로 부자가 되고, 그리스는 날로 가난해지는 양극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상적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외채는 계속 불어날 것이기에, 큰 폭의 평가절하로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이는 조치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극복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 경우 그리스의 외채 상환부담이 폭증하고, 자국 내 금리의 급등, 기업과 금융기관의 연쇄도산 등 예상되는 충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역의존도가 낮은 그리스 경제가 평가절하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지 않다는 점 역시 문제다. 무엇보다 이는 유로존의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터부시되고 있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유로존의 재정을 통합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어려운 지방(그리스)을 중앙(EU)이 지원해 풀어 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저항이 대단하다. 잘 사는 지방(독일ㆍ프랑스 등)의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노무라인터내셔널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수준의 연방재정 체제를 꾸리기 위해서는 독일의 경우 GDP의 3.5%를 EU예산에 납입해야 한다. '연방세'가 지금의 다섯 배로 늘어나는 셈이다.
시한폭탄의 바늘을 그때마다 조금씩 뒤로 미루는 것이 당장은 유일한 방도다. 구제금융이 지원되는 3개월 주기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감에 빠지는 것도 불가피해 보인다. 미룰수록 문제는 깊어질 수밖에 없는데, 계속 감당해낼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뉴 노멀(New Normal)'이 요구하는 준칙대로 나쁜 시나리오를 늘 염두에 두는 게 좋겠다.
안근모 기자 ahn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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