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쇄 현대重 노조위원장, 故정주영 회장 일화소개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창업자의 향기가 묻어나는 일화가 문득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경영자가 아닌 현역 노조위원장이 던진 말이다. 오종쇄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은 지난 23일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 강당에서 열린 아산사회복지재단 창립 43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강연자로 나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 대해 이같이 추억했다.
이날 심포지엄의 주제는 '아산 정주영과 한국경제 발전 모델'로 창업과 교육, 복지 측면에서 정 명예회장이 이뤄낸 업적을 되돌아보는 자리로 마련됐다. 오 위원장은 정 명예회장이 생전에 가장 많은 애정을 보였던 기능인 교육제도에 대해 설명했다.
강연 도중 오 위원장은 얼마전 현대중공업 초창기 현장에서 일했던 선배와 만나 식사를 하는 가운데 들었다는 '손바닥 사인' 일화를 소개했다.
"창업자께서는 현장을 순시하시다가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를 만나면 손바닥에 사인을 해주셨고, 노동자가 그 사인을 총무부 담당자에게 보여주면 시급을 더 올려줬다고 한다"며 "처음 시작할 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저는 그 이야기 속에서 기능인을 사랑하고 현장을 중요시하는 창업자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현장중심의 경영과 일하는 사람들에게 창의적 역동성을 발휘시키는 힘이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창업을 앞두고 정 명예회장은 조선소에서 일할 수많은 기능인을 모아야 했다. 하지만 당시는 베트남 전쟁 특수에 이어 중동 건설붐이 일어나 기능인력 부족은 매우 심각했다. 해외에 나가서 몇 년만 고생하면 집 한 채는 장만할 수 있었기에 너도나도 해외로 나가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 명예회장은 기능 인력의 부족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1972년 조선소내에 훈련원(현 기술교육원)을 설립했다.
오 위원장은 "훈련원은 당시 배고팠던 우리 국민들이 기술을 배우고 미래의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이자 희망을 제시해준 곳이었다"며 "훈련원 출신들은 단기간에 배운 기술을 현장 경험을 통해 숙달시켰고, 이를 축적시켜 우리나라를 세계 1등 조선 산업국으로 만들어 지금의 현대중공업을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우리나라 산업현장 곳곳에서 노동의 가치를 빛내고 있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기능인이 최고의 애국자라며 아끼고 살폈던 창업자의 의지와 기능인들의 피나는 노력이 함께 이뤄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노사 갈등을 의식한 듯, 오 위원장은 "창업자께서 현장을 내집처럼 생각하시고 기능인을 우대하셨던 것처럼 우리 사회도 노동자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회사와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도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그는 "천연 지하자원 하나 없이 오로지 인력과 기술력으로 압축성장을 거듭해 세계경제 10위권에 오른 우리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와 기능인을 천대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노동자 스스로 자존감을 갖고 우뚝 서야 하며 정부의 정책과 사회적 제도들로 인해 노동자가 존중받고 기능인이 대우받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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